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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Mar 30. 2022

내성적인 소녀, 가수를 꿈꾸다.

성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나는 태생적으로 정말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엄마와 함께 단체 소풍을 가서 같이 손잡고 춤을 추는 활동이 있었다. 친구들은 전부 즐겁게 잘 추었지만 나는 어찌나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었는지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부끄러워 치마를 입에 물고 베베 꼬는 모습의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안양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내려온 나는 원래 내성적인 데다 친구들까지 모두 낯설어서 더욱 말수가 없어졌다. 가끔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하면 친구들은 거친 사투리를 쓰며 나의 서울말을 놀려댔다. 말투도 억양도 너무 이상하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더욱 입을 닫게 되었고 목소리는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았고 아주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코리아나(가수)의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가 엄청 유명했는데 마침 담임 선생님께서 남녀 한쌍씩 짝을 이뤄 그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음악 시험을 친다고 하셨다. 열심히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은 했지만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노래는커녕 말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막상 선생님이 호명을 하자 긴장이 너무 돼서 교단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울다 겨우 진정돼서 다른 친구들이 부른 후 뒷 순번에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내 목소리가 정말 크고 맑았다.(자화자찬인가;;) 나조차 스스로에게 놀라면서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선생님을 비롯해서 모든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박수를 치고 칭찬을 해주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날 이후 노래는 물론이고 내면에 자신감이 조금씩 자라면서 목소리도 커졌다.



중학생 때는 매우 발랄하고 쾌활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더더욱 외향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나중에는 교내 장기자랑 시간엔 언제든 선뜻 나서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대담한 여학생이 되었다.


나는 서태지의 엄청난 팬이었기에 늘 서태지 노래를 불렀었는데, 서태지의 인기가 올라가는 만큼 여중, 여고에서 뜻하지 않게 나의 인기도 올라가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는 수학여행 때 반 대표로 춤을 추며 서태지 노래를 불렀는데 서태지 팬들이(그 당시는 거의 전교생의 대부분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었다.)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불러서 마치 내 콘서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교생 수련회를 가서도 자연스럽게 반대표가 되어서 노래를 불렀는데 반응이 어마어마해서 다음날 다른 반 애들이 나를 보러 교실에 찾아오기까지 하였다.  평소 지극히 평범한 모범생이었던 나의 반전스러운 모습에 놀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보통 우리 때는 나와 달리 잘 꾸미고 잘 노는 애들이 장기자랑을 많이 했었다.)


서태지의 인기를 등에 업고 엄청난 무대의 맛(?)을 본 나는 갑자기 가수가 되고 싶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되었다. 주위에서 모두 노래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해주었고 나도 가수 데뷔를 하면 마치 서태지처럼 인기가수가 될 것만 같았다. 무대 위의 그 짜릿함은 정말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오디션 프로그램도 없었고,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지도 않았다.

나는 학업이 중요한 고등학생의 시기에 수업 후 열심히 노래방을 다니며 노래 연습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고생을 하시는데, 나는 가수로 성공하면 다 보상해드릴게요... 라며 혼자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모범생이었기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겐 겉으로는(?) 착한 학생이자 착한 딸이었다.

지난 글에 썼듯이 어느 날 갑자기 미대에 보내달라고 했던 것처럼 또다시 철없던 나는 어느 날 가수가 되겠다고 선포한다.

(서태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었는데 왠지 뮤지션이 되려면 학업을 접고 음악에 매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황당해하던 부모님은 우선 대학부터 간 후에 다시 생각해보자. 그 이후에도 가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득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수를 잠시 보류(?)하고 마음속으로 방황과 반항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뭐 탈선이나 불량 청소년은 성향이 안 맞았아서 안됐지만, 나만의 소심한 반항으로 그냥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


서태지의 노래 중 교실이데아, 시대유감을 들으면서 나는 교육세태를 비판하고 시대에 반항적인 게 멋있다고 착각하며 요즘 말로 자칭 swag을 만끽하는 여고생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가수에 대한 꿈은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이어지다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밴드부에 들어가서 보컬로 열심히 2년을 보냈고 그래서 목은 늘 아팠다.

(매일 파워풀한 노래를 몇시간씩 부르며 연습해야 했기에..), 그러나 전공학과의 학업도 중요했던 나에게 두가지를 병행하기는 너무 무리였다.

나는 좀 더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디자인에 몰입하기 위해 2학년의 마지막 공연에 모든걸 불태우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지금은 노래는커녕 앞에 나서는 것조차 싫은 데 그때 그 시절에는 그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서른이 넘고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나는 어릴 때처럼 내성적인 조용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이제 그냥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게 훨씬 편하다.


20년은 얌전히 살고, 20년은 활발하게 살아보니 성격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성적인 성향이나 외향적인 성향은 장단점이 있지만 옳고 그름은 없다. 무언가를 할 때 더 적합한 성향이 있고 내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더 유리하다면 뭐라도 못 바꿀까.

정말 절대 바뀌지 않는 건 세상에 하나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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