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선정
그림책 창작 초기 때부터 인스타에 그림작업을 기록해두거나 신간 소식도 챙기는 것이 익숙해지고 있다. 특히 창작 과정을 가끔씩 공유해주는 작가의 책이 출간되면 실물이 어떨지 더 궁금해 반가운 마음으로 구매를 한다. 색연필로 알록달록한 의류를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는 독자에게 그림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림책 작가는 그림 밖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구도를 잡고 초기 스케치를 할 땐 보통 그림 밖에 있다. 원화 작업에 사력을 다할 땐 저절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래서 에디터와 디자이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작가가 창작 중에 그림 속으로 오래 들어가면 길을 헤매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림 속에 오래 머무른 작가의 작품은 결과물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서랍 정리하는 날>은 스웨터에서 솟아오른 실뭉치가 눈송이처럼 밤하늘과 숲에 가득해지는 것을 보여주어 손뜨개질로 한땀 한땀 만든 옷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할머니에서 엄마 그리고 딸에게로 이어진 자손 연대의 정서가 손끝에서 빚어진 옷으로 결속력이 생기는 과정이 책 전체에 자연스럽게 흐른다. 겨울 끝자락에서 서랍을 정리할 때 다시 정성껏 개어 보관하는 오래된 옷이 있다. 그런 옷은 대개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준 옷이다. 세월의 때가 끼지 않는 옷이다. 그런 옷은 그 사람이 준 사랑의 기억이고 흔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조끼가 있다. 엄마가 하얀 털실로 코을 만들때부터 전체 모양을 다 잡을 때까지 기대를 하며 그 과정을 지켜봤었다. 12살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엄마의 손뜨개옷 때문일까? 이 책은 내 마음으로 입은 조끼처럼 착 달라붙었다. 만약에 오랜 과거의 물건을 갖고 올 수 있다면 7살 무렵 매일 빼곡히 그린 두꺼운 그림수첩과 엄마의 재봉틀이다. 기억의 왜곡이 있겠지만, 어릴 때 엄마가 재봉틀에서 뭔가를 만들면 곁에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기다렸다. 솜씨 좋은 엄마가 뭘 만들었을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이 나에겐 '완벽한 평화'였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행복한 순간을 마음에 보관해두곤 다시 꺼낸다. 그런 부분을 살짝 건드려준 그림책을 만나면 꼬옥 안게된다. 이 그림책이 나만의 '완벽한 평화'를 떠올리게 했다. 고맙다.
이렇게 펼쳐 놓으니까 꽃밭같아요.
봄은 늘 꽃과 함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