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정
제목과 작가명이 없는 강렬한 표지에 끌린다. 손바닥만 한 작은 정사각 판형으로 천재질과 은박 특수 가공했고 소장하고 싶게 만들었다. 가끔씩 서가에서 꺼내 밝은 자리에 올려두면 빛이 난다. 책 디자이너의 안목이 놀랍다. 작가는 백석의 시 <절망> 중에 한 구절 ' 아름다운 튼튼한 계집이 있어서'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을 하게 되었다. 고무판화를 파고 찍는 숱한 과정을 묵묵히 해낸 작가를 향해 감탄을 보낸다. 출간은 작가에게 책의 완성과 동시에 창작한 책과의 작별을 의미한다.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을 잡고 가기 때문이다. 책을 보는 내내 여자의 일생을 돌아본다. 나는 여자다. 내 인생에서 함몰된 부분도 보여서 가슴 한편이 책처럼 시퍼렇게 물든다. 백석의 시를 찾아보게 된다. '어느 아침 계집은 /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 가파른 언덕길을 / 숨이 차서 올라갔다. /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중략)'에 눈길이 고정돼버린다. 양육자로서 묘하게 겹쳐지는 어느 긴 기간이 떠오른다. 어쩌면 더 오래 이 기간은 이어질 것이다. 묵직해지는 마음에 담담한 위로도 건네는 그림책은 어느새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이 '단아하고 단단한 여자'로 해석이 되게 만든다. 가족 안에서의 여자. 사회생활 속에서 여자. 정치와 역사의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자. 혼자 있을 때의 여자. 수많은 여자의 상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나는 여자로 행복한가? 뜬금없이 질문을 하게 된다. 섣불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도 씁쓸해진다. 이 감정도 낯설지 않다. 살면서 한 줄씩 새겨 넣은 타투처럼 여자에겐 지워지지 않는 '여자의 상'이 있다. 여자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신을 탐구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이 세상 모든 여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글에 공감하며 이곳에 꾹꾹 눌러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