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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Nov 14. 2023

나 사람 아니야. 나 쓰레기야

영화 <화차>

[도망간 여자와 남겨진 남자]

 문호는 걱정된다. 나랑 결혼하려 했던, 나의 소중한 그녀 선영이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디 납치라도 된 걸까. 하지만 경찰들은 무관심하다. 선영이가 갑자기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결혼 앞둔 여자는 대게 그러하다며 태평하기만 한 경찰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경찰을 믿고 기다릴 순 없다. 초조하고 두렵다. 제발 살아만 있었으면…


 찾다 보니 이상하다. 선영이가 진짜 선영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문호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 여자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타박하는 형에게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는 게 놀라웠다. 분명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 홀렸다가 깨어난 것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까지도. 어디까지 숨겼던 거지? 내 사랑까지도? 그럴 리가 없다. 사랑만은 진심이었을 거야. 분명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나를 사랑해서, 사실 나와 같이, 평온하게 살고 싶었을 텐데 무슨 문제가 생겨서 불가피하게 사라진 걸 거야. 그래. 이름은 모르지만 나의 그녀를 찾자. 찾는다면,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거고, 난…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만 하면 돼.

<화차> 스틸컷

 문호는 눈앞에도 없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순간 선영, 아니 경선이 살인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녀를 감히 의심하다니. 나의 그녀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문호는 종근에게 그녀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화를 냈지만, 사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향한 분노였다. 이런 마음으론 순수하게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할 거야.


 눈앞에 있는 그녀.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이전과 너무 똑같지만, 너무 낯설다. 이 감정을 꾹 담아내고 물어본다.


문호: 잘 지냈어? … 아니지? 네가 그런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그치?

경선: 나야. 내가 그랬어


 더 이상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느낄 수 없다. 너무나 낯설다. 이 감정이 너무나 두렵고,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


문호: 너 대체 누구야. 네가 사람이야?!! 네가 사람이야??!!!!!!!! 너 뭐야…. 너 뭐야!!!!

경선: 나 사람 아니야. 나 쓰레기야. 그때, 나한테 아무도 없었어. 내가 다 한 거야. 나는 강선영이 아니야. 나는…

문호: (와락 안으며) 하지 마. 너 아무 얘기도 하지 마. 아무 얘기도 하지 마


차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을 듣고 싶지 않았다.


경선: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문호 씨,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 좀 가게 해 주세요. 저 좀 제발..

문호: 내가 너 얼마나 걱정했는데, 내가 너 얼마나… 너.. 나 사랑은 했니?


 그 말에 경선은 고개를 저었다. 문호는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 낯선 여자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 연민을 느꼈다. 얼마나 경선으로서의 삶이 힘들었길래 남의 이름으로 살아가려고 했을까..


문호: 가. 더 이상 찾지 않을 테니까 가. 근데, 그냥 너로 살아. 절대 붙잡히지 마.


문호는 그녀를 보냈다.


[쓰레기의 죽음]

 경선은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엄마가 사채업자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죽은 것을 안 뒤,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 남자가 그녀를 동정하듯, 그녀도 그를 사랑하진 않았다.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동아줄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이 사람을 방패 삼아 나를 숨기면 죽음의 위험을 피할 수 있겠지?

 그녀는 소망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지긋지긋한 사채업자들. 나를 괴롭히는 사채업자들도 싫지만, 아빠가 너무 원망스럽다. 내 인생을 망치게 만든 쓰레기 같은 인간. 끝까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선은 사실 자신 때문에 남편의 가게가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빠 그 작자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났고, 자신은 그저 태풍의 눈 같은 존재였다고. 남편은 그저 그 태풍에 휘말린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멀리 떠나려다 붙잡힌 경선. 매를 맞으며 유흥업을 강요당했다. 경선은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빚과 끝없는 성관계는 그녀의 생기를 앗아갔다. 온몸으로 죽음을 느끼다가 그녀는 도망쳤다. 아직까지는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서.

 하지만 경선으로 살면 안 된다. 경선은 사람을 죽였다. 너무 무서웠다. 따뜻하고 미끌거리는 피를 뒤집어쓴 경선은 마치 꿈꾸는 것 같았다. 사람을 죽이다니.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뺨을 쳤다. 정신 차리라고. 이럴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그녀는 차갑게 식은 시체를 처리하러 자신의 살인 현장에 다시 기어간다.

<화차> 스틸컷

 몸은 더럽혀지고, 아빠를 알 수 없는 아이도 죽고, 사람까지 죽인 경선은 이제 정말로 사람이 아니다. 쓰레기다. 그렇게 그녀는 경선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지고 선영이 되고자 했다. 선영이 되면, 나비처럼 훨훨 날아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문호의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은 그날, 경선은 망상에서 깨어났다. 문호와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망상. 그녀는 문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애정을 주는 문호는 사랑하지 않고선 못 베기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건 경선이 아닌 선영이다. 선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선은 전화를 받은 순간, 이를 깨닫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차마 문호를 전남편처럼 자신의 쓰레기 같은 세계에 들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경선은 거짓말한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경선. 그러자 바보 같은 자신의 사랑, 문호가 "도망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로 살라고 한다. 나로 살라고? 나? 어떻게? 그게 가능해? 그건 불가능해. ‘경선’으로 살 수 없어. 종근에 의해 도망가면서 그녀는 계속 생각한다. 나로 산다… 경선은 난간에 올라 떨어졌다. 경선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녀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었고 ‘경선’은 이미 그녀에겐 빈 껍데기일 뿐이었다.


[오늘의 질문]

경선처럼 새 삶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면.. 여러분은 그 후에 어떻게 살 것 같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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