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이.
한국을 제외하고 처음 갔던 아시아 국가는 태국 방콕.
그곳이 싫었던 건 잔인하리만큼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나열되어 있는 빈부격차였다.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단정한 백화점, 호텔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붙어있던 판자촌.
으리으리한 차들 옆에 생전 다큐에서나 봤던 물통을
지게에 이고 지고 가는 사람들.
거의 한 달쯤 있던 방콕에서 모든 게 죄스러웠다.
내가 호화롭게 여행을 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나는 말끔한 인테리어와 쾌적한 실내에 있다가 거리를 지나면 그야말로 다큐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게 나로 하여금 누릴 수 없게 했다. 물론 혼자 간 여행이 아니었고 그런 광경을 보려고 더 적극적이었던 동행인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봤을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새벽시장은 내가 안 가서 다행이라는 말까지 들었었다.너무나 야만적인 곳이었다고 했다.
눈앞에서 모든 살육이 벌어지는(사람을 제외한 모든)
나는 한국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한다.
지하철과 버스를 탄다. 물론 지각이 잦을 때는 택시를 타지만 매일 타지는 않는다. 특히 지하철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본다.
심지어 비교적 깨끗한 편인 ‘분당선’에서 말이다.
방금은 손수레를 끈 할아버지가 타셨었다. 하지만 막상알고 보면 70세가 안되셨을 거 같다.
세상의 모든 고단함과 단시간 내에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주름, 세상의 모든 억울함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너무나 선량한 얼굴, 평생 울음을 참으시고 산 듯한 표정에 새까맣고 건조한 얼굴....
내 생각엔 새벽부터 좀 전까진 분명 저 수레에 재활용쓰레기나 종이더미를 나르셨던 거 같다.
왜. 2026년 한국에서 여전히. 우리는....
내가 뭐 돼서가 아니라, 나는 사회주의자도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나보다 더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지금의 그 선이란 한 끼 대접 정도뿐일 거 같다. 내 가방에 뭐라도 요깃거리가 있었다면... 나누었을 거다.
길에서 만났더라면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었다.
근데 아이러니한 게 이 또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다는 거다. 내가 지하철을 타는 곳엔 두 분의 노숙자 같은 분이 있다. 늘 만나는 건 아니고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데 그 때면 정말 또 큰 용기를 내어 주변에서 샌드위치와 우유 혹은 김밥과 음료수, 빵과 아메리카노를 드리고는 엄청 도망 왔었다. 뭔가 누가 보면 큰일 날 듯... 그러고는 멀리서 드시나 안 드시나를 보곤 했다. 그러다 든 생각이 그분들은 치아가 없으신 거 같았다....
볼이 움푹 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엔 죽이나 걸쭉한 음료를 사드려야지 하고는 막상 만나면 또 큰 용기가 필요하기에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오늘의 할아버지도 막상 길이었다고 내가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돈이 아주아주 많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힘든 노동으로 하루를 다 소진하고도 편할 수 없는 누군가를 맘껏 도와도 괜찮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