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라던데 슬픈 이유에 관하여.
마침내 영상의 온도가 되었다.
유난히 추위를 못 견디고 고통스러워하고 무서워한다. 특히나 한국의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나에게 두려움이기도 하다.
프라하가 훨씬 춥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많고, 동유럽이라는 음침한 이미지로 혹독한 추위를 상상하지만 눈이 이따금씩 왔을 뿐 살이 아리도록 추운 기억은 없다.
물론 젊었다. 많이. 어려서 추위를 덜 느꼈을 순 있지만 방학에 잠깐 오는 한국의 칼바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추위에 약한 만큼 더 따뜻한 날씨를 갈망한다. 그래서 반갑다.
오늘은 ‘입춘’ 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발레 <봄의 제전>에 관하여 나오는데 러시아의 전설에 한 여자를 지목하여 죽을 때까지 춤추게 한다고 한다.
즉,
대가 없이 희생 없이 봄이 오지 않는다는 믿음이라고...
‘봄’ 이 온다는 것이 비단 날씨뿐인가.
분명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 절대 공평해 보이진 않지만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 마침내 흑백이 컬러가 되는 초록잎이 나고 꽃이 피고 울창해지며 찬란하게 아름다운 금빛의 단풍..... 그리고 다시 겨울.
겨울이 물리적으로 힘든 것뿐 아니라 실제 삶에도 겨울을 지난다는 것은 결코 대가가 없지 않고 희생이 없지 않으며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나의 자아의 소멸까지 요하는 듯하다.
집에 가는 길에 가을엔 가로등과 콜라보로 너무 아름다운 은행나무길이 있다. 가을에 너무 아름다워서 잊지 않고 사계절 내내 유심히 본다. 여름엔 초록의 은행잎 그리고 그 이전에는 애기 은행잎으로 너무 귀엽기까지 하다.
지금. 앙상하디 앙상한 가지다. 너무나 앙상해서 봄부터 가을까진 보이지도 않던 새집까지 또렷하게 보인다.너무나 앙상하고 초라해서 민망할 지경이다.
한 겨울 체감상 시베리아를 지나고 있는 나와 같다.
<봄의 제전>의 여러 버전 발레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봄을 기다리는 것.
봄을 맞이하는 것.
봄을 준비하는 것.
나는 지금 어느 정도 지쳤을까.
실신하기 직전일까.
아직 준비운동 중인 건가.
그래도 위로가 된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 봄을 맞이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섭리를 다시 확인한 거 같아서.
그래서 언제쯤 나는 봄의 제전이 끝날지 요원해만 보여서 그 싫어하는 추위가 가기 시작하는 이 날.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