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 6일제여도 행복했었다

행복은 왜 발전과 함께 오지 않는가

by 장면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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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제를 기억하는가.

지금 20대 초반이라면 아마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고, 회사에 출근하던 시절.

주 5일제가 도입된 건 2004년이니, 그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가 이미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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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인 나는 그 과도기를 몸으로 겪었다.

격주로 쉬는 '놀토', 토요일 오전에 학교에서 진행하던 CA 시간.


돌이켜보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당연했으니까.

당연한 것은 고통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 시절, 교대 근무의 표준은 3조 2교대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혹독한 스케줄이지만, 당시엔 주 6일보다 적게 일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4조 2교대가 당연한 기준이 되었고, 명절이 주말과 겹치면 대체휴일까지 주어진다.



세상은 분명 나아지고 있다. 제도도, 기술도, 환경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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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은 오르고, 출생률은 내려간다.

통계는 냉정하게 그 사실을 가리킨다.

주 5일제가 생기자 사람들은 주 4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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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앱이 생기자 전화 주문은 불편함이 되었다.

직방이 생기자 발품 파는 일이 번거로움이 되었다.

편리함은 이전의 불편함을 고통으로 소급 적용한다.


인간은 익숙해지는 데 놀랍도록 빠르고, 만족하는 데 놀랍도록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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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벨'이라는 단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세상이 그 단어를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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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이라는 나라를 기억하는가.

2010년대 초반,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던 곳.


2019년, 그 행복 순위는 95위로 곤두박질쳤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SNS가 들어왔다.

다른 나라의 삶이 화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교는 행복을 잠식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비교를 공기처럼 마시며 사는 나라다.



문명의 발달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데려온다.

장점만 취할 수 있다면 삶은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단점까지 함께 끌어안으면, 아프리카 오지의 어느 부족보다도 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수 있다.



한국인의 출근길 표정을 보라.

그리고 발전과 거리가 먼 어느 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라.

웃음이 어디에 더 많은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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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공을 두 가지로 본다. 부(富)와 행복.

둘 다 잡아야 진짜 성공이다. 부만 있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반쪽짜리다.

그렇다면 행복을 지키는 열쇠는 무엇일까.


문명이 주는 혜택은 누리되, 그것이 데려오는 독(毒)을 걸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감각이 필요하다.

남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습관.

편안함에 무감각해지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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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할 때 앞만 보는 사람보다, 백미러를 수시로 확인하는 사람이 더 안전하다.



삶도 마찬가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지만,

가끔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단단하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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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제가 당연하던 시절, 사람들은 지금보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불편했지만. 느렸지만. 비교할 창이 없었으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편리함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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