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굳이 호의적인 필요가 있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먼저 웃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나의 논리를 한 번 들어봐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차갑게 살아간다.
출근길 운전만 봐도 알 수 있다. 깜빡이를 켜면 속도를 올리고, 양보해 주면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사람은 드물고, 카페에서 주문이 조금 늦으면 인상부터 쓴다.
우리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먼저 호의적인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호의적이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괜히 잘해줬다가 호구 되는 거 아니야?"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작은 말투 하나로 괜한 싸움이 생기고,
무뚝뚝한 한마디가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다.
호의를 베풀지 않아서 생기는 손해는 눈에 잘 안 보이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호의를 이득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로 본다.
이득을 노리고 웃는 게 아니다. 그냥 손해 보기 싫어서 웃는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면 대부분의 상황은 부드럽게 끝난다.
호의는 착함이 아니라 일종의 방어 기술이다.
30대가 되니 옛말이 비로소 이해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말들이 왜 살아남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인간관계는 거창한 이벤트로 굴러가지 않는다.
결국 말투와 태도에서 결정 난다.
물론, 호구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분명 있다.
호의를 권리처럼 받아들이는 사람,
양보를 약함으로 해석하는 사람.
나도 겪었고, 어디서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날을 세우는 건,
단 몇 명 때문에 수십 명과의 관계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셈이다. 그게 더 큰 손해다.
중요한 건 하나다.
호의를 유지할지, 끊을지를 내가 결정하는 것.
처음엔 부드럽게, 선을 넘으면 단호하게. 이건 착함이 아니라 선 긋기 능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호성의 법칙 안에서 움직인다.
작은 친절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빚을 진 느낌을 받고, 비슷한 온도로 돌아온다.
아닌 사람은 정리하면 된다.
소수의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다수의 괜찮은 사람들을 놓치는 것, 그게 더 손해다.
나는 이득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손해 보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오늘도 먼저 호의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내가 음식점에서 종종 서비스를 받고,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호의적일 필요가 있냐고?
꼭 그래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보자면, 손해가 적다.
이득은 웃었을뿐인데,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이 따라온다는 말처럼.
근데 이건 그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다.
그냥 먼저 웃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