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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아 Apr 06. 2022

홍은전(2020) 작가의 ⟪그냥, 사람⟫ 읽으세요!

읽고 국민 009901-04-01715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후원하세요

장애열사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일은 마치 완성되어 있던 레고 작품을 해체한 뒤 다시 조립하는 일 같다. 그의 생애를 횡으로 종으로 조직하며 나는 여러 열사들을 만났다. 1984년 휠체어를 탔던 지체장애인 김순석은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고, 1995년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은 철거에 맞서 저항하던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최옥란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싸우다 음독을 시도했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정태수가 떠난 자리는 내가 장애인운동을 시작한 자리이기도 하다. 경석은 눈과 코가 빨개져서 울었고 태수의 18번곡인 ‘의연한 산하’를 불렀다. 그는 2001년 나에게 혁명처럼 닥쳐온 그 세상이 실은 아주 느리고 치열하게 조직되어 온 거대한 우주였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 "[세상 읽기] 그냥, 사람" 홍은전, 한겨레신문 


올해 초에 ⟪그냥, 사람⟫(홍은전)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그냥사람전국민읽히기운동본부(그사읽기본)'를 결성했다. 회원으로는 대표인 나와 상임위원인 친구 주온이 있다. 책을 읽고 사회정의감이 뜨겁게 불타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50 페이지쯤 이르렀을 때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책 ⟪그냥, 사람⟫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뜨거운 눈물로 젖은 페이지 수만큼 책 디자인도 차차 새롭게 읽히기 시작했다. 먼저 키 컬러로 쓰인 노랑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은 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키 컬러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역사를 다룬 그의 전작 ⟪노란 들판의 꿈⟫(홍은전)을 떠올리게 하고, 그가 기록해 온 세월호 가족을 떠올리게 하며 그들을 ‘그냥,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광장이나 거리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는 번짐의 활용이 탁월한데 추상적 인상으로 남겨두었기에 글을 이해할수록 그 풍경 안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장애인이나, 고양이 그리고 학생들이 하나씩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경험과 유사하다. 표지에 쓰인 종이도 일러스트의 번짐과 찰떡궁합인 거친 비도공지를 활용해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며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제목은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얌전히 눈에 띄지 않는 책의 중앙 왼편에 자리 잡아 역시 듣고 기록하는 자로서의 작가의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책의 성격을 전달하는, 충실하게 제 몫을 해내는 디자인이었다.


후에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김영옥, 이지은, 전희경) 역시 좋아 한참을 봤는데 ⟪그냥, 사람⟫과 같은 출판사의 책이며 같은 디자이너의 작업인 걸 알게 되었다. 출판사의 대표이자 기획, 편집자의 인터뷰에 디자이너가 30년 차 베테랑으로 언급되고 있었다. 찾아보니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의 절반 이상이 같은 디자이너의 작업이었다. 디자인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아마 긴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추어 온 협업자 간의 신뢰와 존중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디자인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얼마 전에 작업을 거절한 일이 떠올라 좀 우울해졌다. 책이 담은 가치에 비해 만드는 과정이 부조리하게 느껴져 사과를 요구하고 그만뒀다. 문제는 이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듣고 또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디자인을 보며 순수히 좋아만 하기가 어렵다. ⟪그냥, 사람⟫같은 책을 읽고 배우는 그만큼 그 괴리가 더 괴로워질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은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545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21.10.05)에 기고한 글의 미교열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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