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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May 24. 2020

잘 웃는 승겸이

승겸이가 여덟 살이 되었다. 생일이 십이월 말이라 사실 만 여섯 살이다. 지난 연말 생일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 가슴에 하트모양의 파란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태권도를 잘하고 친구와 동생들을 잘 도와주는 승겸이’.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이 써서 가슴에 붙여주신다고 했다. 아이는 생일날 하루를 주인공으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축하와 우대를 받으며 가슴에 하트를 붙이고 생활하는 모양이었다. 재작년 여섯 살 생일에 승겸이가 가슴에 붙이고 있던 글귀는 ‘잘 웃는 승겸이’였다. 나는 승겸이가 ‘노래를 잘하는 승겸이’라던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승겸이’보다는 ‘친구와 동생들을 잘 도와주고, 잘 웃는 승겸이’여서 마음이 좋았다. 그게 뭐라고 늙은 엄마의 마음이 살짝 뭉클했다.

 나이 오십에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많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었다. 승겸이가 서너 살 때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거나 시장에라도 나가면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들은 승겸이에게 말을 걸면서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여행 왔구나’, ‘할머니하고 시장 왔네~’ 라고 말해서 승겸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승겸이가 ‘엄만데요’라고 해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지나가기도 했다. 한번은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 승겸이와 함께 갔더니 몇 십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엄마가 너무 나이가 많으면 아이들이 창피해 하더라고~’ 하며 자기의 얘기를 굳이 나와 승겸이 앞에서 하던 친구같지도 않은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승겸이와 함께 한 지난 육 년은 고백하건대 순간순간이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생후 만 오 개월 된 승겸이가 우리에게 왔을 때 나와 남편은 물론 구십이 다 되셨던 시어머니까지 곧 아이에게 빠져버렸다. 그리고 한 순간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밥 먹을 때도 싸운 사람들 같던 집안에 생기가 돌고, 낮에는 늙은 개나 어슬렁거리던 여섯 호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아이의 쨍쨍한 노랫소리로 시끌벅적해지는 날이 많아졌다. 소심이(승겸이가 지어준 강아지 이름)와 아랫집에 내려갔다 엄마를 부르며 언덕길을 올라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적은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곤 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오가며 눈인사나 나누고 지나치던 동네 할머니들이 아이 분유를 사 들고 오신 일이었다. 대부분 새벽에 일어나 농사일을 하시고 산 넘어 아파트 단지에 청소를 하러 다니시는 어른들이었다. 동네에 오랜만에 아기가 생겼다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분유 두 통을 사서 아이를 보러 오셨다. ‘아이가 얼굴이 뽀야난게 엄마를 닮았네’라고 해서 나를 눈물짓게 하신 아랫집 소민이 할머니는 지금도 동네의 유일한 아이인 승겸이의 친한 친구이다. 

 이제는 미운 일곱 살을 지나고 있는 승겸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보드라운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 토실한 엉덩이를 토닥이며 잠이 들던 달큰한 시간들, 오래 전 잊어버렸던 동요를 함께 부르고, 봄이면 뒷산 민들레에게 인사하고, 비오는 날 개구리를 찾아 논길을 함께 쏘다니던 날들이 지나갔다. 세상과 처음 만나는 아이를 통해 나도 오래전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만났고, 이웃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 고맙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만세를 부르듯 두 손을 번쩍 들고 몸을 흔들며 격하게 반기던 너의 모습에 눈물 났다고, 너와 손잡고 걸었던 한걸음 한걸음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가슴 벅찼다고 승겸이에게 언젠가 말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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