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비행기가 몹시 흔들렸다. 영화를 보던 화면이 일시 정지되면서 기장의 알아듣기 힘들지만 대략 짐작이 가는 짧은 기내 방송이 나오고 곧이어 다급한 목소리의 스튜어디스가 한국말로 안내 방송을 한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지금 난기류 지역을 통과하고 있어 비행기가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고 기장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화장실 사용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롭던 기내에 긴장감이 감돌면서 여기저기서 안전벨트를 묶는 찰칵거리는 금속성만이 들리고 모두들 말이 없어졌다. 장시간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갇혀 있던 몸과 여행 끝의 지친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몇 만 피트 허공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행위는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물론 난기류를 통과하다 추락하여 죽을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 보다 적다는 것, 그리고 곧 이 위기의 순간은 아마도 별 일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보잘 것 없음을 실감하는 순간이 허공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 바람의 기류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흔들리는 몸과 함께 마음이 흔들리는 때인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곧추세우며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아이의 손을 잡아 본다. 혼자 여행을 할 때보다 몇 배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아이가 통과해야 할 생의 난기류는 또 얼마나 혹독할 것인가, 소중한 것이 생기면 두려움이 더 커지는 법이다.
언젠가 너무도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실제로 나는 이대로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꽤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 긴장감으로 모두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기내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작게 들릴 땐 내가 잘 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작게 키득거리던 소리는 점점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낄낄거리다 어느 순간 웃음이 멈추었다. 사실 얼마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키득거림은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마치 보잘 것 없는 안전벨트를 매고 긴장감에 입을 다물고 불안에 떨고 있는 마음이 비웃음을 당한 기분이랄까. 어디서 누가 웃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쩌면 그 여자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난기류를 통과하다 보면 점점 마음의 동요가 옅어진다. 몇 번의 부침을 겪고 나면 어떤 나쁜 일 앞에서도 마음의 층이 두터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비행기는 그 후로도 착륙하기 까지 한 두 번의 난기류 지역을 더 지나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상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도 난기류 따위는 잊어버리고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가끔 그 위기의 순간에 키득거리던 웃음소리가 생각나곤 한다. 비행기의 난기류보다 혹독한 생의 난기류를 지날 때, 그까짓 것 한 번 키득거려주고 지나갈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