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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걷는 최선화 Jan 27. 2024

땔감의 추억

식물의 재발견

오늘 아침 “참나무 예찬”이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필자인 김진하 시인은 혹한의 겨울 아침저녁으로 아궁이 앞에 앉아서 군불을 때는 소회를 적으면서 장작으로 일품인 참나무에 대해서 예찬합니다.

“불땀은 단연 참나무가 으뜸. 참나무는 송진이 밴 소나무보다 불이 더디게 붙지만, 일단 불이 붙고 나면 화력이 세고 이글거리는 참나무 알불은 혀를 대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 칼럼 ‘참나무 예찬’ 중에서

https://www.nongmin.com/article/20240124500531


 시인의 글을 따라 잠시 유년의 아궁이 앞으로 달려갑니다. 불땀은 땔나무에 있어서 불기운이 세고 약한 정도를 말합니다. 불을 때 봐야 불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무에 따라 불땀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무가 습기를 머금은 정도 등에 따라서 그날 그날 불땀이 바뀌기도 합니다. 굴뚝에 연기가 잘 빠지지 않는 비 오는 날은 불쏘시개로 마른 나뭇잎을 아무리 넣어도 불이 잘 붙지 않습니다. 그런 날은 불땀도 덩달아 약해집니다.


지금은 시골기름보일러로 아침저녁으로 군불을 때는 집이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겨울 저녁 4시 30분 경이면 집집마다 여물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불기운은 아궁이 위에 큰 가마솥 여물을 데우면서 구들방도 함께 데웠습니다. 돌아 생각해 보니 우리가 먹을 밥보다 소가 먹을 여물을 끓이는 일이 항상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소여물을 펄펄 끓이면 안 되니 어느 정도 따뜻해지면 아궁이의 불을 옆 아궁이로 옮겨 저녁밥을 준비합니다. 한쪽 가마솥에는 보리밥이 익고 있고, 조금 더 큰 옆 가마솥에는 따뜻한 물이 끓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아궁이 앞에 앉는 것은 잠 때문에 힘들었지만 오후 4시 30분경 여물을 끓이려고 아궁이 앞에 앉는 것은 주로 제 일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출타 중이 아니시면 하지 못 하는 그 일을 저는 참 좋아했습니다. 한때 나에게 혹 불을 좋아하는 나쁜 마음이 들어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적도 있었지만 저는 불 앞에 혼자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가으내 거두어다 둔 솔잎, 참나무 잎들로 불쏘시개를 했는 데 불이 쉬 붙지 않으면 언니에게 자리를 뺏길 수 있어서 조바심을 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때 땔감으로 썼던 나무들이 어떤 나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가끔 소나무가 땔감으로 쓰이는 날은 송진에서 나오는 그을음으로 글 장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통으로 되어 있는 나무들은 누군가 베어서 쪼개어 주어야 땔감으로 쓸 수 있습니다. 동생과 재미 삼아 나무들을 톱으로 베어 본 기억도 떠오릅니다. 도끼로 나무를 쪼개 보겠다고 몇 번 설쳤던 기억도 떠오르는 데 무서웠다는 감정만 남아 있습니다. 시골 남자는 장작도 거뜬히 팰 수 있어야 진정한 남자였습니다.


지금은 결혼할 때보다 10kg 이상 쪄서 살도 좀 있는 남자가 되었지만 결혼할 때 남편은 키도 작고 왜소해 보였습니다. 삼 남매의 증언으로 이쁘다고 차별받던 셋째 딸이 결혼하고 싶다고 데려온 남자가 왜소해서 아버지는 좀 실망하신 듯하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처가에 간 남편이 장작을 패는 모습을 보고 사뭇 놀라셨지요. 츤데레 남편은 처가에 가면 소파와 한 몸인 형부와 달리 집 주변 나무 전지도 하고 장작도 패곤 해서 아버지께 은근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두 아버지를 잃은 남편은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제 아버지가 없네.”라고 말해서 아픈 제 맘을 더 아프게 했었답니다.


지금도 길을 가다 베어진 나무들을 보면 ‘저거 땔감으로 쓰면 잘 타겠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유년의 기억이 무섭습니다. 글 하나의 힘이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글 하나가 우리를 몇 십 년 전 과거로 이끌기도 하고 몇 백 년 전으로 타임슬립하게 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살아남은 글과 그 시간만큼 살아온 나무, 땔감으로 쓰여 소멸된 나무들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시간입니다.


엄마가 찍어보내주신 장작ㅡ 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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