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고추사백구에서칠십구모판가식’
엄마가 암호문 같은 문자를 보냈는데, 친구들과 산행 직후라 바로 전화를 못 드리고 다음 날 아침 통화에서 그 암호문에 대해서 여쭈었다.
“엄마, 문자 잘 받았어요. 어제 속리산 갔다 오느라 문자 받고 바로 전화를 못 드렸어요.”
“잘했네. 엄마도 옛날에 속리산 가 봤어. 아빠랑 부녀회에서 갔었지…….”
우리는 잠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속리산 이야기에서 엄마가 보내 주신 달래 이야기로 이어갔다.
“엄마, 고추를 옮겨 심은 거예요?”
“어. 고추를 400구 판에서 70구 판으로 옮겨 심은 거지.”
“고추가 커서 큰 집으로 옮겨준 거네요. 그럼 그게 몇 포기예요?”
“그러니까 400구가 네 판이었는데 70구로 옮기면서 열일곱 판이 된 거지.”
“그게 천 포기예요?”
수학에 약한 나는 계속 개수에 집착하다 계산기를 꺼내 두들겨 본다. 1,190개다.
“400구 판에서 안 자란 거나 이런 건 빼고 했지. 전기선이 있어서 지난번 사진이랑 똑같다고 하겠지만 잘 보면 다르다.”
“엄마, 내일 춥대요. 따뜻하게 하고 주무세요.”
“그래. 내일 춥대서 고추에 전기선 치울라고 하다가 그냥 뒀어.”
“엄마, 잘 쉬세요. 사랑해요.”
“그래… 사랑한다.”
고추 모종이 전기선 깔린 하우스에서 잘 자라는 봄날, 엄마와의 통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엄마와 매일 통화를 하면서 나는 농사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농부의 딸로 20년을 부모님과 살았지만 생각만큼 농사일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런데 엄마와 매일 통화를 하면서 이것저것 여쭤 보고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고향 동네는 늦으면 4월까지도 눈이 내린다. 그런 날씨에 하우스에서 자라는 고추 모종이 얼어 죽지 않는 게 신기했다. 나는 밤이면 덮어 주는 두꺼운 덮개 덕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영하 15도 이상 내려가는 날씨에 그 덮개만으로는 어린 싹이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았다. 엄마와 통화를 자주 하면서 그 고추를 살려 주는 게 전기선이라는 걸 알았다. 고추는 전기선이 깔린 따뜻한 모판 위에서 영하의 봄밤을 이기고 있었다.
고추 모종과 전기선의 비밀은 엄마와의 통화에서 알게 된 사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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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구 모판에 심겨져 있는 고추 모종들 (사진 제공 :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