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에선 봄에 시집을 보내지 않았는데 난 봄에 왔어.

by 읽고걷는 최선화

“엄마, 동창회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 이따 오후에”

“뭐 타고 가세요?”

“선아 아빠라고 있어. 그 아저씨 차를 타고 가기로 했어. 4명이 같이 출발해.”

“몇 분이나 오세요?”

“8명. 서울에서 오는 여자 친구가 있어서 가는 거야. 먼저 가서 못 오는 사람이 이제는 더 많다.”


엄마는 어제 외박을 하셨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회를 가셨다. 그 못 오는 동창 중엔 아빠도 있다. 아빠는 엄마와 국민학교 동창생이다. 한 장 있는 졸업 사진에서 앞쪽에 서 있는 조그만한 꼬마와 뒤쪽에 그 꼬마보다 커 보이는 엄마를 찾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아빠보다 2살 연상이셨다.


엄마는 음력 삼월 열이틀에 아빠와 결혼하셨다. 영화에서처럼 알콩달콩 연애로 하신 결혼이 아니라 두 분 할아버지께서 맺어준 결혼이었다. 엄마의 결혼 스토리는 몇 해 전 언니와 셋이 떠났던 1박 2일 경주 여행에서 들었다.


옛날 촌에서는 딸을 봄에 시집보내면 시댁 농사일을 거드느라 힘드니까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게 밉보여서 봄에 시집을 오셨다. 엄마가 16살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 때 막내 이모가 7살이었는데 외할아버지는 막내 이모가 9살이 되었을 때 아들이 하나 있는 여자와 재혼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에게 ‘새엄마’가 되던 그 여자는 당시 귀하던 살림살이를 혼수처럼 준비해서 외갓집에 살러 오셨다고 한다.


엄마와 그 ‘새엄마’ 사이에 큰 갈등은 없었지만, 함께 데리고 온 아들과 문제가 생겼다. 막내 이모 나이와 비슷했던 그 남자아이는 툭하면 이모를 때렸다고 한다. 보다 못한 엄마가 그 아이를 때렸고, 그 여자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 일 뒤, 노하신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서둘러 시집보내셨다. 엄마는 그렇게 4월의 신부가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4월의 신부가 되게 했던 건 미워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10명이 넘는 대가족이었던 외갓집에서는 식사 한 끼 준비해서 어른들부터 차례로 먹고 나면 먹을 게 부족해서 배를 골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시댁은 아빠 위로 셋 있던 누나들이 결혼을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네 식구에 단촐한 살림이었고 농사도 짓고 있어서 배고프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엄마의 결혼 이야기에는 그 흔한 꽁냥꽁냥도 없고 달달함도 없는 듯 보이지만 17살 어린 신랑과 두 살 연상의 신부가 아들 둘 딸 둘을 낳고 오순도순 북적북적 살았으니 그 나름 괜찮은 결혼 생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의 결혼 생활은 어땠는지 묻는 건 참 조심스럽다. 아빠가 계셨다면 조금 편하게 묻고 아빠 없는데서 아빠 흉도 같이 보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러면 엄만 그 날 오랫동안 아빠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격 급했던 할아버지와 한 번도 뵙지 못 하고 말씀으로만 들었던 성격 대단했던 할머니 사이에서 엄마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심지 굳었던 아빠가 계셨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두 분 아버지가 맺어준 상대와 하는 결혼은 연애를 하고, 모든 결혼 준비를 알아서 하는 요즘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오래 전 결혼 풍경이다.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해서 40년이 조금 더 되는 시간을 함께 하셨다. 1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은 못 했지만 엄마 환갑에 금목걸이 하나 선물 받으신 게 유일한 결혼기념일 선물이셨다고 한다.


두 분과 함께 살 때는 사는 게 바빠서 챙기시지 못 하던 결혼기념일을 우리 모두 떠난 후 여유가 좀 있으실 때 어떻게 보내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다 전화를 드리면 결혼기념일이 비슷한 이웃과 저녁을 먹었다는 말씀을 가끔 하시곤 했으니 외식으로 퉁치신 듯 하다. 번잡스러운 걸 싫어하는 아버지가 이벤트같은 걸 하셨을리 없지만 엄마에게는 그렇게 평소와 다른 조금 특별한 식사 시간도 참 소중하셨을 것 같다.


엄마에게 동창회에 가서 커피를 쏘시라고 용돈을 조금 보내 드렸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엄마가 때마다 챙겨주셨던 우리의 결혼기념일과 생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엄마에게 소소한 용돈을 드릴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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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침에 사남매가 있는 단톡에 일출 사진을 올려주셨다. (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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