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눈치를 주니 베를 더 열심히 짜게 되더라.

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by 읽고걷는 최선화

아침 통화에서 엄마가 손 이야기를 꺼내셨다. 엄마는 오른손이 조금 불편하시다. 어렸을 때 강변에서 놀다 다쳤는데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그렇게 되셨다고 한다.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지만, 그 손이 오래도록 마음에 걸리셨을 것 같다. 언젠가 병원에 간 김에 그 손에 대해 물었더니 의사는 수술을 하면 된다고 했단다. 하지만 나이 들어 굳이 수술까지 해야 할까 싶어 그냥 지내신다고 하셨다.


시집 온 새 신부였던 할머니는 엄마 손이 왜 그런지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 말 속에 박힌 가시가 느껴져서 엄마는 밭일을 마친 밤에 짜던 베를 더 열심히 짜셨다고 한다. 엄마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되었을지 짐작이 간다. 숨 막히던 그 시간 속에서 엄마는 오빠를 낳고 조금 숨통이 트이셨다고 한다. 첫아들을 낳고 둘째로 언니를 낳았는데, 욕심 많던 할머니는 딸이라고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정작 당신은 딸을 셋이나 낳고 아빠를 낳으셨으면서도 말이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해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와 얽힌 추억이 없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딸 셋을 낳고 얻은 귀한 아들이었을 텐데, 할머니는 아빠에게 크게 정이 없으셨다고 한다. 학교에 싸 가는 도시락도 할아버지가 챙겨 주셨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는 뒷집 주막에 가 계셔 집에 안 계신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엄마의 나들이를 그렇게 싫어하신 것 같다.


엄마는 복중에 나를 두고 할머니 상을 치르셨다. 우연히 들었던 내가 태어나던 해 이야기는 어른들 말로는 소설책 몇 권은 나올 이야기였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빠가 계셨지만 집안살림을 도맡게 된 엄마는 할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쌀을 이고 절을 찾기도 하셨다고 한다. 여름휴가 무렵, 친정에 갔다가 엄마와 함께 찾았던 그 절은 짐 없이 올라가기도 힘든 길이었는데, 임신 중이던 엄마는 어떻게 쌀까지 이고 그 길을 오르셨을까.


아주 어렸을 때는 엄마의 손이 신경 쓰였다. 혹여 누가 볼까 봐 엄마와 길을 걸을 때는 그 손을 꼭 잡고 걷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이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의 손은 괜히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 시고모가 엄마 손이 왜 그러신지 물은 적이 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화를 내며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 시고모는 그냥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었을 텐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건 시고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엄마는 그 손으로 못하는 것 없이 다 하신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재봉틀로 재봉질도 잘하셨고, 바느질도 늘 꼼꼼하셨다. 농사일도 못하시는 게 없었고, 입 짧은 아빠를 위해 간단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맛내기 어려운 음식들도 무난하게 해내셨다.


시댁에 처음 인사를 갈 때는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갔다. 이후 찾아뵐 때는 안경을 쓰고 갔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내가 안경을 쓰는 걸 알고 계셨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는데, 둘 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두 손자가 안경을 써서 인물을 버렸다고 하셨다. 그 말이 그렇게 듣기 불편했다.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 시력교정수술을 해 주었다.
그제야 엄마가 밭일에 지쳤는데도 베를 그렇게 열심히 짰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사람은 가끔 직접 겪어봐야 그 의미를 더 깊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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