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뭘 하시나요?”
“쪽파 심는다.”
어제 이른 아침 지방으로 수업을 가는 길에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쪽파를 심고 계셨다.
쪽파도 심어야 하고 복지관 실버대학에도 가셔야 하는 엄마의 아침은 분주했다.
이럴 때는 빨리 전화를 끊어드리는 게 예의다.
짧게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엄마, 쪽파 심은 거 사진 좀 찍어 보내주세요.”
그 사진이 아침에 도착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 어제 못 다한 쪽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쪽파는 밭에 바로 심어요?”
“그럼. 밭 이랑에 구멍을 파고 한 개씩 심으면 되지.”
“엄마, 쪽파가 크면 대파가 돼요?”
“아니지. 대파는 씨가 따로 있지. 대파는 포트에 심어서 밭에 옮겨 심어도 되고, 요즘 같은 때는 바로 밭에다 심어도 돼.”
엄마 말씀을 듣고 보니 대파꽃이 피고 시들 무렵, 그 속에 가득 들어 있던 까만 대파씨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그것이 부추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보내주신 쪽파 종구 사진을 보니 대파씨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도 또 하나 배웠다.
고향집에는 사계절 내내 파가 있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밭가나 밭 한두 골에 늘 파가 심겨 있었고, 겨울에는 김장을 하며 뽑아 둔 파를 비료 포대에 담아 얼지 않는 현관에 두고 먹었다. 식사를 준비하다 파가 필요하면 밭가에 나가 한두 뿌리 뽑아 오면 그만이었다. 그 자리에서 겉껍질을 벗기고 뿌리는 뚝 잘라 밭에 버리면, 그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었다.
나는 파가 떨어지지 않게 늘 준비해 둔다. 엄마처럼 밭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근처 마트에서 사 온 파를 세워 두고 한 뿌리씩 꺼내 요리에 쓴다. 하지만 요리를 띄엄띄엄 하다 보면 마지막 남은 파는 시들어 버려, 먹은 것보다 버리는 쓰레기가 더 많을 때도 있다. 시골집에 다녀올 때 조금 많은 양의 파를 가져오면 손질해 냉동실에 얼려 둔다. 잘게 썬 파는 국에 넣어 먹고 두부를 조릴 때 쓰고, 조금 크게 썬 파는 고기볶음이나 된장찌개에 넣는다.
요리를 할 때 파가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다. 파의 강한 향과 매운맛 때문에 성인이 된 뒤에도 파를 골라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파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파 맛이 좋아진다.
아직까지는 생파보다는 젓국에 한숨 죽은 파김치나, 요리 속에서 다른 재료와 어울리며 익은 파가 더 좋다. 톡 쏘는 맛이 조금 누그러진 파를 좋아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간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살아보니 톡톡 쏘는 사람이 눈에 띌 때도 있지만, 오래 마음이 가는 쪽은 은은한 향이 배어 나오는 사람이다.
엄마의 쪽파 사진 한 장 덕분에 오늘 아침도 나는 하나를 배웠다. 파를 심는 법만이 아니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의 향기에 대해서도.
사진제공 ㅡ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