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기 우리 엄마 계신가요?”
“그래, 우리 딸. 오늘은 어딜 가나?”
우리의 아침 통화는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올해 들어 장거리 외부 수업이 잦아지면서 생긴 엄마의 문안 인사다.
“오늘은 공원에 운동 나왔습니다. 엄마는 뭐 하세요?”
“열무를 심는다.”
열무를 심는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대화가 끊길세라 얼른 질문을 이었다.
“열무는 얼마나 지나야 먹어요? 밭에 바로 심어요, 아니면 가식해요?”
“열무는 조그맣고 납작한 씨를 밭에 바로 심어. 한 구멍에 서너 개씩 넣으면 되지. 심을 때는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깊이로 구멍을 파서 심으면 돼. 지금처럼 춥지 않고 더울 때는 20~30일이면 먹을 수 있어. 30일이 지나면 억세지지. 열무씨는 한 봉지에 3~4천 원 하는데, 한 봉지면 40미터 정도 심을 수 있어. 근데 굳이 한 봉지를 다 심을 필요는 없지. 필요한 만큼 심고, 다음에 또 심어서 먹으면 되지.”
“열무를 심고 나면 뭐 해 줄 거 있어요?”
“특별히 안 해 줘도 자기가 알아서 잘 커. 다른 밭에 비료 줄 때 열무 심은 데도 조금 주면 되지만, 굳이 안 그래도 잘 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열무를 심고 계셨다. 내가 좋아하는 열무김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러자 문득 몇 장면의 기억이 따라왔다.
우리 집에서 읍내의 고등학교에 등교 시간에 맞춰 가려면 아침 7시 40분 첫 버스를 타야 했다. 그 버스를 타도 교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8시 20분쯤이었다. 고3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무조건 8시까지 등교하라고 하셨다. 등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던 동네 친구와 나는 읍내에 자취방을 구했다.
당시 3만 원 하던 자취방은 부엌도 없이 방 하나만 달랑 있었다. 친구와 나는 전기밥솥과 전기냄비인 파티쿠커로 밥도 해 먹고 도시락도 싸서 학교에 다녔다. 주말에 집에 다니러 가면 엄마가 열무김치를 해 주셨다. 냉장고도 없던 방 안에서 열무김치는 미지근한 국물 속에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쉬어 갔다. 그 김치로 점심 도시락도 싸고, 고추장을 넣어 밥도 비벼 먹었다. 엄마표 깨보숭이와 들기름을 넣으면 고봉밥이 금방 사라지곤 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씹히던 그 맛은 어떤 맛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남편 말고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수원에서 신혼을 시작했을 때도 열무김치는 그리움이었다. 남편은 연일 야근으로 바빴고, 계획보다 빨리 첫아이가 찾아왔다. 소중한 생명이 함께한다는 감사함과 함께 우울감도 깊어져, 출근하는 남편을 붙들고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았을 때면 엄마가 담가 주셨던 열무김치가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해 담가 달라고 부탁해도 되었을 텐데, 그때는 그게 왜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길을 걷다 ‘열무국수’라고 써 있는 집이 있으면 혼자 들어가 먹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담가 주시던, 시큼하면서도 국물 맛이 시원하던 그 맛은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를 위안 삼아 그 국수를 먹곤 했다.
사실 열무는 김치로 먹어도 맛있지만, 삶아서 된장을 넣고 살짝 무쳐 먹어도 맛있다. 까칠한 열무 잎은 삶으면배불러서 기분 좋아진 아기처럼 부드러워진다. 열무의 녹색을 선명하게 하고 싶으면 삶을 때 소금을 조금 넣으면 된다. 살짝 데친 열무를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 뒤 뭉텅뭉텅 잘라 양푼에 넣고, 들기름과 마늘을 조금 넣는다. 된장을 한 숟가락 퍼 넣고 깨보숭이도 조금 넣어 푹푹 무쳐 준다. 맛을 보고 싱거우면 소금을 조금 넣으면 되는데,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생각이면 소금을 더 넣지 않는다. 다른 비빔밥 재료가 없어도 된다. 고추장을 조금 넣어도 되지만, 나는 된장 특유의 맛으로 먹는 열무나물무침이 좋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열무를 심고 20~30일이면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질문을 이었다.
“열무 크는 데 시간이 그것밖에 안 걸려요? 그럼 열무김치 좋아하는 사람은 열무를 계속 심어서 먹을 수 있겠네요.”
“그럼 되지. 김장무 심을 때는 무씨를 여러 개 심어서 그걸로 열무김치 담가 먹으면 돼.”
“엄마, 엄마가 담가 주던 물 자박하던 그 열무김치 맛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담가요?”
“한 20일 된 열무를 뽑아서 손질하고 소금에 죽여야지. 소금물로 해도 되고 소금을 뿌려도 되는데, 한 30분 죽이면 돼. 김치할 때 옥수수 삶은 물을 넣으면 맛있어. 죽은 열무는 세 번 정도 씻어 주는데, 이때 문대면 풀내 나서 안 돼. 거기다 고추도 좀 갈아 넣고, 마늘도 좀 넣고, 싱거우면 소금도 좀 넣으면 되지. 열무김치에는 젓갈은 안 넣어. 옥수수 삶은 물이 없으면 풀을 연하게 쑤어 넣어 주면 돼. 부추나 쪽파도 넣어 주고. 대파를 많이 넣으면 진이 생겨. 근데 안 한 지 하도 오래돼서 이제는 다 까먹었어. 니네 클 때 많이 해서 먹었는데…. 백숙이랑 닭도리탕도 맛있게 잘 했는데, 그것도 안 한 지 오래되니까 잘 안 되더라. 먹는 거는 자꾸 해 먹어봐야 맛있더라.”
엄마 말이 맞다. 익숙한 일도 하지 않으면 손이 무뎌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제 제법 써진다 싶어 며칠 쓰기를 멈췄다가 다시 쓰려면 첫 문장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글쓰기만 그런 게 아니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으면 자꾸 해 봐야 한다. 무언가가 궁금하면 자꾸 시도해 봐야 한다.
엄마의 말은 보물이다. 엄마 손과 정성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을 열무도 보물이다. 달력에 표시해 두고 지금부터 스무 날쯤 지나면 엄마 집에 가서 열무김치에 밥을 넣고 쓱쓱 비벼 먹어야겠다. 아, 벌써부터 맛있겠다.
열무씨 ㅡ 엄마사진
엄마표는 아니지만 열무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