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진미를 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3대 진미"라는 이름은 세계의 입맛을 대표하는 진리가 아니라, 한 시대, 한 문화가 만들어낸 호사와 권위의 상징이다. 결국 맛의 기준은 세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디서 기쁨을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어느 미식 프로그램에서 셰프가 트러플을 깎아 넣으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입니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다 멈췄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가 정했을까. 세계 3대 진미를.
국제미식기구 같은 곳에서 전 세계 음식 전문가들이 모여 투표라도 했을까. 유엔 산하기관에서 공식 발표를 한 건 아닐까. 아니면 미슐랭 가이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한 걸까.
검색해 보니 허무했다. 그런 곳은 없었다.
세계 3대 진미란 건 그냥 누군가 그럴듯하게 붙인 이름이었다. 트러플, 캐비아, 푸아그라. 이 세 가지를 묶어서 '세계 최고'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람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마치 복권 번호를 뽑는 기계가 정말 공정한지 따져보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게는 흰개미가 최고의 별미일 것이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발효시킨 생선이 신의 선물 같은 음식일 수도 있다. 이누이트족에게는 생고래 간이 최고급 요리일지 모른다. 그저 밥그릇의 차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음식들은 '세계 3대 진미'에 들어가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돈과 권력이 있는 곳의 기호만이 '세계적'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귀족들이 즐겨 먹던 비싼 음식이, 어느 순간 전 세계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파레토 법칙을 아는가. 전체 결과의 80%가 20%의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법칙이다. 하지만 이것도 빌프레도 파레토라는 이탈리아 경제학자가 발견해서 이름을 붙인 것일 뿐, 자연 자체가 '이게 법칙이야'라고 선언한 건 아니다.
세계 3대 진미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기준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낸 기준이다.
일본에서 이 말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일본의 요리 프로그램이나 미식 잡지에서 '세계의 고급 진미'라는 표현으로 트러플, 캐비아, 푸아그라를 자주 언급했고, 이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으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어쩌면 천재적인 마케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세 가지 비싼 식재료를 하나로 묶어서 '세계 3대'라는 권위를 부여한 것. 사람들은 이 권위 있는 이름에 솔깃했고, 자연스럽게 '고급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2억짜리 술이 완판 되고 5억짜리 술이 편의점에 등장하는 시대다. 가격이 곧 품질이고, 희소성이 곧 가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3대 진미'라는 말도 이런 심리를 파고든 것일 수 있다.
다만 내 친할머니는 다른 생각이셨을 것 같다.
할머니에게 세계 최고의 음식을 물어봤다면, 아마 이렇게 답하셨을 것이다.
"손자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며 같이 먹는 밥이 제일이지."
명태의 여러 이름을 모두 외우셨던 할머니. 생태, 동태, 북어, 황태... 같은 물고기라도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다르게 부르며 각각의 쓰임새를 알고 계셨다. 할머니에게는 명태가 세계 3대 진미보다 훨씬 소중한 식재료였다.
할머니의 기준에서 보면 트러플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비싸기만 하고 냄새도 이상한 덩어리 아닌가.
음식에는 숫자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첫 월급 받아서 부모님께 드린 삼겹살. 새벽 2시에 친구들과 나눠 먹은 라면. 몸이 아플 때 끓인 죽. 연인과 처음 함께 만든 계란프라이.
이런 음식들은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지 않는다. 세계 3대 진미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어떤 고급 요리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MRI 기계의 강력한 자성처럼, 추억이 깃든 음식은 우리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 힘은 가격이나 희소성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음식은 수치로 측정하지 말자.
추억과 감정. 그 순간의 상황과 함께 어우러진 경험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파도바 식물원이 세계 최초의 식물원이라고 해서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식물원은 아니다. 최초라는 타이틀과 최고라는 가치는 다른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세계 3대 진미라는 타이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음식은 아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에게는 어떤 음식이 세계 최고인가.
김치찌개일 수도 있고, 엄마가 해준 미역국일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 사 먹은 붕어빵일 수도 있고, 혼자서 끓인 컵라면일 수도 있다.
그것이 당신만의 3대 진미다.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세계가 인정하지 않아도, 당신에게는 그것이 최고다.
맛의 기준은 세계가 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정하는 것이다.
진짜 진미는 비싼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트러플보다 할머니 손맛이, 캐비아보다 엄마표 김치가, 푸아그라보다 아빠와 먹은 치킨이 더 소중할 수 있다.
세상에는 정해놓은 기준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 기준들 대부분은 누군가 임의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때로는 그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보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에게는 어떤 음식이 세계 최고일까?"
그 답이 바로 당신만의 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