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서 피어난 혁명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초등학생 시절, 옆자리 형이 신기한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회색 화면에 뭔가를 적고 있는 모습이었다. 키보드도 마우스도 없이 말이다.
"형, 그게 뭐예요?"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야. 터치하면 글씨 써진다."
그는 투명한 플라스틱 펜을 건네며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꾹 눌러봐. 세게."
나는 그 작은 펜으로 화면을 찔러댔다.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더 세게 누르니 그제야 점 하나가 찍혔다. 글씨를 쓰려면 상당한 압력을 가해야 했고, 몇 글자만 써도 손목이 아팠다. 마치 못에 망치를 내리치듯 화면과 대화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저항막 터치스크린과의 첫 만남이었다.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공개하는 키노트 영상 Apple의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인 Keynote(키노트)로 만들어진 영상을 봤다. 그는 무대에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슬쩍 건드렸다. 펜도 없이, 힘을 주지도 않고 그저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 화면이 반응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리자 사진이 확대되는 모습이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내 손 안의 피처폰 화면을 터치해 봤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터치는 압력을 의미했으니까.
잡스는 기존 터치스크린의 한계를 부각한 후 자신의 제품을 소개했다. "오늘날의 터치스크린은 플라스틱 펜이 필요하고 반응이 느립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꾸려 합니다."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의 전형이었다. 999달러짜리 개별 기능들을 먼저 제시한 후 실제 아이폰 가격을 499달러로 발표했던 그 순간처럼.
터치스크린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영국의 E.A. 존슨까지 닿는다. 하지만 그 뿌리는 더 깊다.
19세기말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를 상용화했을 때, 그는 아마 자신의 아들이 훗날 사기꾼이 되어 감옥살이를 하리라곤 상상 못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존슨 역시 자신이 발명한 기술이 인간의 손가락 끝 미세전류까지 감지하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발전하리라곤 몰랐으리라.
초기 터치스크린은 모두 저항막 방식이었다. 두 겹의 투명 필름 사이에 전류를 흘려보내고, 압력으로 두 층을 접촉시켜 좌표를 인식하는 구조. 복권의 은박지를 동전으로 긁어내듯, 물리적 힘이 있어야만 작동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저항막 터치스크린은 PDA와 ATM에서 활약했다. 은행에서 ATM을 사용할 때 플라스틱 펜으로 화면을 꾹꾹 눌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둔탁한 반응속도와 어두컴컴한 화면이 바로 저항막 방식의 특징이었다.
마치 고급 휘발유와 일반 휘발유의 차이처럼, 같은 '연료'라도 성능에는 차이가 있었다. 옥탄가 94 이상의 고급 휘발유가 엔진을 더 부드럽게 돌리듯, 터치 기술도 더 정교하고 반응성 좋은 방식이 필요했다.
그 해답이 바로 정전식 터치스크린이었다.
정전식은 완전히 다른 철학에서 출발한다. 사람 몸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화면 전체에 균등하게 퍼진 정전기장이 손가락의 접촉으로 변화할 때, 그 지점을 파악한다.
이는 마치 게슈탈트 붕괴현상과 같다. 같은 글자를 계속 보다 보면 그 의미가 해체되어 버리듯, 터치의 개념도 압력에서 접촉으로 완전히 해체되고 재조립됐다.
압력이 아닌 접촉. 누름이 아닌 스침. 물리적 충격이 아닌 전기적 소통.
터치 기술의 발전은 라면이 노란색인 이유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는 비타민B2라는 노란색 비타민을 넣었기 때문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라면을 끼니로 때우는 것을 배려해 영양분을 보충하려는 목적이었다. 터치 기술도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었다.
아이폰 등장 이후의 변화는 혁명 그 자체다. 터치가 더 이상 '입력 수단'이 아니라 '경험의 방식'이 됐다.
멀티터치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의 행동양식이 바뀌었다.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벌리면 확대되고, 스크롤은 종이를 넘기는 것만큼 자연스러워졌다. 하이파이브를 처음 시작한 선수가 있듯이 - 1977년 LA 다저스의 글렌 버크와 더스티 베이커가 홈런 후 손바닥을 마주쳤던 그 순간처럼 - 우리와 스크린 사이에도 완전히 새로운 인사법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디코이 효과(Decoy effect)도 작용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미끼 효과 말이다. 소비자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세 번째의 '미끼' 옵션을 추가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아이폰처럼 터치 기능이 없는 휴대폰은 갑자기 초라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가격에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폰 옆에서, 기존 피처폰은 매력을 잃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껌 시장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심심할 때 꺼내는 물건이 껌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껌을 소비하지 않게 됐다.
모든 발전에는 상실도 따르는 법이다.
저항막 방식은 장갑을 끼고도 조작할 수 있었다. 겨울철 버스 정류장에서 두꺼운 장갑을 끼고도 PDA를 사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또한 펜이나 손톱처럼 뾰족한 것으로도 입력이 가능해 정밀한 작업에 적합했다.
반면 정전식은 맨손이어야 반응한다. 겨울마다 우리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장갑을 벗고 스마트폰을 만져야 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손가락 끝에 전기가 통하는 실을 넣은 '터치 장갑'이 나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새로운 필요가 또 다른 기술을 부른 셈이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용 스타일러스도 등장했다. 끝에 고무나 특수 소재를 붙여 전기가 통하도록 만든 펜이다. 애플펜슬이나 S펜이 대표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펜을 버리고 손가락을 택했다가, 다시 펜을 들게 됐다. 다만 이번에는 압력이 아닌 전류로 소통하는 펜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격일까.
간단했던 문제가 복잡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편익을 위한 작은 불편함이었다.
지금도 저항막 터치스크린은 사라지지 않았다.
산업 현장이나 특수 환경에서는 여전히 쓰인다. ATM이나 공장의 제어 장치, 의료기기 등에서는 정확성과 내구성이 사용자 경험(UX)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통령 출마 자격에 나이 제한이 있듯(우리나라는 만 40세 이상), 각 기술에도 적합한 영역과 조건이 있다. 러시아는 35세, 일본은 25세처럼 나라마다 다르듯, 터치 기술도 용도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성능의 향상이 아니라 철학의 변화 아닐까. 저항막에서 정전식으로의 전환은 '힘으로 누르는' 것에서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으로의 변화였다. 기계적 압박에서 전기적 소통으로, 의도적 입력에서 자연스러운 제스처로의 이행이었다.
터치스크린의 진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건, 언어의 변천사다.
전 세계 언어는 20세기에 5천 개 이상이었다가 21세기 들어 3천 개 정도로 줄었다. 실제 사용하는 언어는 500개에 불과하다. 한국어는 그중 12위 정도의 빈도를 차지한다.
터치 기술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방식이 시도됐지만, 결국 살아남은 건 몇 개뿐이다. 저항막과 정전식이 투톱을 이루고, 최근에는 압력 감지까지 추가된 3D 터치나 햅틱 피드백 등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사용법은 오히려 단순해진다는 것. 가장 진보한 기술일수록 가장 직관적이라는 것.
손가락 끝의 미세한 전류가 화면 속 정전기장과 만나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들. 우리는 그것을 그저 '터치'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가장 친밀한 대화법이다.
터치스크린이 바꾼 것은 입력 방식만이 아니다. 우리가 정보와 만나는 방식,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제 우리는 화면을 터치하듯 세상을 만진다. 가볍게, 부드럽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압력에서 전류로, 입력에서 경험으로.
터치의 진화는 계속된다. 언젠가는 터치마저 넘어서서, 생각만으로도 기계와 소통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다른 회고를 쓰게 될 것이다. 접촉에서 의념으로, 터치에서 텔레파시로.
하지만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을 것이다. 기계를 만지고 싶어 하는,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본능적 욕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