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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06. 2020

격양됨을 경계할 것

절대 현혹되지 마라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싶은 생각이 들며 지난 순간을 강력하게 후회할 때가 있다.


이렇게 뒤늦게 후회하는 이유는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서 내가 평소 견지하던 사고나 행동과는 동떨어진, 때로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행동을 해버렸기 때문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때에는 그렇게만 해야 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뭐에 씌었다거나 눈이 뒤집어졌다는 등의 표현을 한다.


술을 먹어서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이거나 나이 듦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인한 신체적 감정적 변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찰나의 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자식 앞에서 부모는 감정적으로 변하기 쉽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반드시 아이에게서 나를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나 행복해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부분을 통해 나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으로 각인되며 삶의 이유가 될 만큼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아이가 싫어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 등을 바라보며 그것의 뿌리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미안함으로 때로는 안쓰러움으로 모습을 달리하며 나타나다가 몇 가지 조건이 갖춰지는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작스레 폭발하며 아이와 나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때때로 특정한 단어나 문장 앞에서 극도로 자제력을 잃기도 한다. 특정한 부정적 경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그것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일반적인 반응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김 씨 남자들은 왜들 그래?"라는 말이나 "여자는 이러이러해야지"라는 식의 논리적으로 전혀 납득되지 않으면서 나를 비난하는 말을 부모나 특정 가족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듣고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단어나 문장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싸매어두지 못하고 급하게 풀어버리고 만다.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고향 등 감정 깊은 곳에 어떤 단어가 연결되어 그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 단어에 얽힌 특별한 에피소드가 존재하거나 나의 감정 깊숙한 곳에 어떤 이유로든 그 단어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때때로 타인에 의해 선동된다. 히틀러는 대단한 달변가이자 선동가였고 그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매력에 선동되어 많은 국민들은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선동가가 늘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선동한다.


정치인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당파의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유튜버나 인스타 그래머, 틱토커 등 SNS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영향력이 곧 돈으로 환원되는 세상이기에 자극적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스트리머들이 존재한다. 대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때로는 언론이, 때로는 문화예술이 그 역할을 도모하는데에 이용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선동으로 인해 가장 위험한 상황은 언제나 그러하듯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우리는 자식을 통해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되거나, 특정 매개물로 인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이 건드려졌을 때, 혹은 선동가에 의해 우리의 감정을 조종당할 때 감정의 폭발을 경험한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트리거들이 우리의 눈을 어느 때고 뒤집어 놓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이 순간 발생하기 때문이다. 격양이라는 감정은 때때로 호기로운 영웅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위태로운 희생양을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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