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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08. 2020

이상은 관념 속에만 존재하기에 애달프다

과정을 즐겨야 하는 이유

중간만 하라는 말이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적당한 균형을 잡으며 어느 극단적인 위치에 서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일 테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세상을 살아온 우리 이전 세대의 어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모난 돌, 다시 말해 중간이 아닌 튀어나온 가장자리가 되지 않길 바라는 따듯한 마음에서 이런 말을 아래 세대에게 전수해주었을 테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개성이 강한 성격으로 태어났거나, 의도적으로 자신의 색을 분명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중간을 고르려 노력하게 된다. 퇴직 후 치킨집을 많이 차리는 것, 다수가 몸담고 있는 종파를 따르는 것, 베스트셀러가 계속해서 베스트셀러로 남는 것 등은 우리가 중간적 선택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들 인지도 모른다. 호불호가 두려워 대세에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라는 기준점 없이 다수의 흐름에 따르게 되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다면 왜 중간에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인가. 중간에 서지 않고 자신의 신념이나 취향을 드러내게 되면 반드시 적이 생기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평온이나 무탈함과는 한 발자국 떨어진 보폭을 유지하는 것임을 알기에 중간만 하라는 말이 때때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모두의 바람대로 중간의 선택만 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간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이상향과 그 이상과 대치되는 현실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향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향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뿐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이라는 것은 과연 실존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쩌면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란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그 과정만이 실존한다고 믿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 최고의 보물을 찾아 나서며 주인공이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는 원피스라는 성장 만화가 있다. 어쩌면 그 만화 작가는 "원피스란, 보물이라는 특정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찾아 헤매던 과정 자체였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개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무수한 꿈들이 있다. 개인을 넘어 지역적, 민족적, 국가적으로 품고 있는 보다 광범위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꿈도 있다. 이런 꿈이나 이상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이 세상에서 실현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완벽한 민주주의나 완벽한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어렵사리 그것에 도달하더라도 새로운 이상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상이란 무엇인가. 나의 모든 것을 걸어 반드시 성취하고자 하는 무엇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걸어 어렵사리 그것을 성취해냈는데 새로운 또 다른 무엇인가가 생긴다면 그전에 이뤄냈던 이상은 과연 이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새롭게 태동하는 이상 역시 추후에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과연 이상이라고까지 부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상은 관념 속에서만 재하는 것, 혹은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언제나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기 어렵다.


중간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은 이상에 가깝다. 일과 사랑, 결혼생활과 육아, 취미나 인간관계 등 삶의 전반에 걸쳐 누구나 이상을 그리고 있고 이상에 도달하고 싶어한다.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지만 그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에 고달프고 때로는 애달프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상에 가까운 현실 끝자락 어딘가 즈음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평생 동안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정을 즐기는 것 말고는 도무지 그 시간들을 버텨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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