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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Oct 20. 2020

선 좀 넘지 말라고!

주차라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복심을 품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여 타인에게 혼란을 야기시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변수에 의해 변화무쌍하게 변화하고 언제든 다른 존재로 뒤바뀔 수 있는 유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인간을 완벽히 파악한다는 것은 인간의 내부적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에는 내가 그를 파악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내가 파악하고 있는 그 사람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행동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기에 무방비 상태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고 당황스럽다는 말일 테다. 우리가 타인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심지어 잘 알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일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면 뒤통수를 맞는듯한 느낌을 조금은 덜 경험할 수 있을까?


얼마 안 되는 정보로 인을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짓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가끔  몇 가지 도드라져 보이는 행동으로 타인의 성향을 파악하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그것은 제한된 정보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한, 기어코 불행이 동반될 것임을 예상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생존의 방식일 것이다.


자가운전을 하며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루에 최소한 두 번씩 매일 반복하는 행위가 있다. 주차가 바로 그것이다. 매일 주차를 하면서 때로는 기분이 좋고, 때로는 기분 나쁜 경험을 한다.


주차라인 정 가운데에 반듯하게 차를 집어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 주차라인 선을 물고 주차를 시켜놓는 사람, 주차라인을 벗어나서 주차를 하는 사람,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주차를 하는 사람 등 다양성이라는 것이 종의 생존 메커니즘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주차장에서도 인류학적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두 칸에 걸쳐 차를 주차해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까지는 차마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이와는 반대로 다음에 주차할 사람을 배려해서 벽면에 바짝 붙여 주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이런 자세야 말로 전인류의 분노 수치를 줄여주면서 세계평화에 기여할만한 위대한 행동지침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급한일이 있어서라거나 운전실력 미숙이 주차를 반듯하게 하지 못한 이유라면  정도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도량이 우리에겐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런 피치 못할 이유가 아니라 개인의 욕심이나 부주의로 인해 주차의 룰을 깨뜨리고 있는 자동차를 마주할 때 우리는 마주하지도 않은 익명의 한 인간의 성품에 대해 거의 동일한 평가를 하곤 한다.


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누군가에게 쏘아질 때 그것이 곧 기회와 회생의 박탈처럼 느껴져 그다지 선호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때때로 치솟는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주문을 외우듯 혼자서 조용히 웅얼거리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선을 지키는 일은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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