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너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자의적 판단

by 정 호
창 밖에서 미지의 소리가 울린다.


소리의 존재를 재빨리 규명하기 어려워 한동안 가만히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건물 사이의 빈틈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려 애쓰는 칼칼하게 찢기어진 겨울바람 소리인지, 번식기가 찾아온 고양이의 앙칼진 울음소리인지, 어린아이가 내뱉는 생존을 향한 외침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기묘한 소리가 창 밖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읽던 책을 덮은 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해 창문을 여는 것조차 멈추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겨울을 맞아 잎이 다 떨어져 버린 앙상한 나뭇가지.


한 여름 싱그러운 생기를 다 뿜어내 버린 뒤 마지못해 그 자리에 버티며 스러져가는 나무 한그루와,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혹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울어대는 것만 같은 소리가 공존하는 장면을 마주하고 있자니 스님이 염주를 한 알 한 알 세어가며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을 본 것과 비슷한 종류의 기이한 이질감을 느껴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잠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들었는지 창 밖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고양이나 아기의 울음소리이기보단 바람 소리이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바람, 시작의 설렘보다는 쉼이나 휴식과 어울릴 것만 같은 겨울바람, 그것이 눈앞에 드리워진 겨울의 나목에 조금은 더 어울리는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서둘러 창을 열어
소리의 존재를 명명하고 싶다.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난 다음에서야 우리는 안도하거나 그다음 생각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와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혼란으로부터 해방된다. 알 수 없는 존재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혼란과 당황을 점지한다.


창 밖에서 나는 소리의 근원은 분명 존재한다. 바람, 고양이, 아기, 셋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그 존재와 직면하기 전까지 그 존재의 근원은 나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리저리 뒤바뀐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미지의 존재들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것일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문득 떠오른다. 실체는 따로 있는데 우리는 실체에 비친 그림자밖에 볼 수 없으면서 그림자가 전부인양, 게다가 그림자에 자신의 상상력까지 덧붙여 가면서 이것이 맞네 저것이 맞네 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을 진실인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직면하며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진실이란 것이 세상살이에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창문을 열었을 때 고양이인지, 아기 울음인지, 바람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답이 명확히 보이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굳이 진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얇은 창을 하나 앞에 두고 가만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