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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16. 2021

편집된 세상

인간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없다. 결국 일부를 부분적으로 인지할 뿐

영화를 본다. 전개가 빠르건 느리건 영화는 영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영화는 한 사람의 일생 전부를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화는 특정한 사건,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어느 한 단면을 부각해 두 시간 내외로 편집하여 다듬는다. 우리는 그렇게 다듬어진 두 시간 남짓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에 몰입하며 잠시 동안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끼거나 공감하고 떠올리며 다짐한다.


편집은 강력하다. 창작자의 의도를 넣어 그의 생각과 관점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고 제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영화나 TV와 같은 시각 매체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편집은 특징이 있다.
의도가 포함되어 있고
전체가 아닌 부분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편집된 세상 속에서만 살다 가는지도 모른다. 음악을 녹음하는 과정을 생각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원테이크로 녹음을 마쳤다는 말을 가수들이 자랑삼아 하는 것으로 보아 한방에 녹음을 끝내는 일은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닌, 아주 예외적인 상황인 것처럼 들린다.


후렴 부분을 녹음하고, 느낌이 살지 않는 부분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수백 번씩 반복하며 녹음하고, 피처링을 해주는 다른 뮤지션은 또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녹음하고, 이렇게 조각조각 녹음한 음원들을 자연스레 이어 붙이면 한 곡의 노래가 완성된다.


물론 이렇게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있어야 가장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소비자가 듣게 되는 것은 사실일 테지만 이것을 과연 라이브한, 즉 생생하고 현장감이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한 편집을 통해 최상의 음원을 제공하지만 라이브를 들으면 기대에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음원과 다른 목소리, 다른 음역대, 부족한 가사 전달력과 마뜩잖은 감수성이 드러나는 가수들이 부지기수다.  


굳이 예술작품이나 어떤 창작물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역시 편집으로 가득 차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아니 거의 모든 부분이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SNS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당연해서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 역시 SNS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SNS가 기술의 도움을 받아 현실로부터 조금 더 멀리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우리의 일상 역시 편집된 채 드러난다는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가식과 허물없이 지내는 가까운 친구사이라고 할지라도 24시간을 붙어서 지내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씩 만나며 서로가 나누는 모든 것들은 편집된 생각과 편집된 모습과 편집된 감정들이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감정을 나누며 좋은 모습으로 마주 앉는다. 물론 좋지 않은 모습과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편집된, 다시 말해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모습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부부라는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결코 전체를 볼 수 없다.


언제나 아주 부분적인 장면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뿐이다.

작게는 한 사람의 인생부터 크게는 세상의 진리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안전한지도 모르겠다. 편집된 것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모든 것을 목격하거나 목격당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영화 트루먼쇼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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