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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07. 2020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경로 이탈. 불안정과 확장된 안정의 시작점

전국에서 몇몇 도시밖에 운영하지 않는다는 카카오 바이크.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도시가 그중 한 곳인 덕분에 가끔 재미 삼아 카카오 바이크를 애용하곤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잠시 시간이 생겨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으며 아침 공기를 마시던 와중에 노란색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걷는 것과 자전거를 타는 것, 어느 것이 생각을 가다듬는데 더 좋을까 고민을 잠시 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순간의 민망스러움과 비슷하게도 그런 고민을 왜 했는지 무색하게 카카오 T 어플을 열어 카카오 바이크 결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자전거를 탔다는 이유가 옹색하게도 곧바로 아무런 생각 없이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띠링 띠링


자전거를 탄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휴대폰에서 반복적으로 들릴 듯 말듯한 크기의 알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스치는 바람과 상쾌한 공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이 아쉬워 반복적인 소리를 발산하며 자신을 확인하라고 요구하는 휴대폰의 알림음을 무시한 채로 한참 동안 바퀴를 굴렸다.


손에 찔린 작은 가시가 더욱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법. 미세하지만 지속적으로 신경을 건드는 것을 영원히 무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계속해서 울리는 알람이 대체 뭔가 싶어 잠시 자전거를 멈춘 채 결국 휴대폰을 확인하게 되었다.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지도의 일정 부분이 굵은 선으로 표시된 채 빨갛게 반짝거리며 서비스 지역을 이탈했다는 알림을 반복적으로 띄우고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내 안의 소심한 부분이 갑자기 화악 커지며 마음이 급해졌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서비스 지역으로 복귀하기 위해 자전거의 핸들을 급하게 돌렸다.


이 조그마한 도시 안에서도 지역 전체를 서비스 범위로 지정하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철저한 경제 논리에 입각한 기업의 정교한 계산 아래 결정된 자본주의의 결과였을 것이다. 너무 외딴곳까지 자전거를 몰고 들어가 버리면 적절하게 순환되지 않는 자전거를 기업에서 수거하는데 비용이 들어 수익성이 떨어질 테니 말이다.  


5G 시대의 초입을 살고 있는 현재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휴대폰의 전화가 잘 안 터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산에 오르거나 외딴 지역에 들어서면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 문득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의 불안감과 단절감이 엄습하곤 했다.


대학시절 자취를 하던 동기의 자취방에 모여서 가끔 술을 먹었더랬다. 특이한 것은 그 친구가 살던 그 원룸 건물 안으로만 들어가면 희한하게 전화기가 먹통이 되었다. 전화를 할 일이 있으면 모여있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 그중 터지는 전화를 이용해서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외딴곳도 아니었고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서비스 지역이라는 것은 문명이 제공하는 어떤 안전한 바운더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휴대전화와 카카오 바이크와 같은 사소한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서비스 지역을 이탈한다는 것은 불안감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국가나 집단, 문명과 기술, 문화와 관계 같은 어떤 거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 안에 소속되어 안정을 영위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인생에 있어서 서비스 지역을 이탈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불안정을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안정적인 상태를 벗어나 불안정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데에는 이견을 제시하기 힘들다.


안정은 태초에 불안정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것 안에서 중심과 균형을 찾고 그것을 안정화시키고자 하는 노력 끝에 결국 안정은 탄생한다. 서비스 지역을 벗어났다는 것. 그것은 불안정의 시작이지만 달리 보면 확장된 안정의 시작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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