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고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
말 한마디 때문에
누군가를 끔찍이도 미워했던 적이 있었다.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한 후배가 있었다. 측근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웠던 그 후배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계기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그 후배가 나의 험담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였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친하게 지냈던 그 후배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주변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나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를, 있는 말과 없는 말을 적당히 섞어 퍼뜨리고 다닌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 꽤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처음 한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전할 때에는 "에이 설마 뭔가 오해가 있겠지", "네가 잘못 알았겠지"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삼인성호라는 말처럼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의 숫자가 하나 둘 늘어나자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후배에게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문자와 전화도 여러 차례 남겼지만 그때마다 읽씹을 당하면서 내 안에 의아함과 분노는 점차 커져갔다.
결국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친했던 한 사람과 거리가 멀어졌던 경험을 기억 한편에 가지고 살고 있다. 갈등의 원인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는지 그에게서 비롯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으나 결국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나쁜 말은 잠복 기간이 긴 독과 같아서, 심장 깊숙한 곳에 떡 하니 똬리를 틀고 숨어 지내다가 예상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불쑥 튀어나와 그 독이 마치 원래 나의 독이었던 것처럼 역한 기운을 뿜어대며 나와 남 모두를 괴롭게 한다.
태어나길 못되게 태어나서 나쁜 말을 일삼는 사람도 있을 테고 불행하게도 오랜 세월 못된 소리에 노출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에 못된 말버릇이 스며들게 된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우리는 나쁜 말을 뱉는 사람의 인생사까지 들여다보며 그 사람의 말버릇의 근원을 거슬러 이해심을 발휘해가면서까지 타인과 관계를 이어나갈 여유가 없다.
남 이야기할 것 없이 나만 해도 그렇다. 긴장이나 어떠한 것에 대한 무지함, 혹은 떨림, 낯섦 등의 이유로 어떤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나를 조여 오고 있을 때면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되도않는 헛소리를 지껄여놓고 스스로 민망해했던 적이 있다. 그와 비슷한 빈도로 타인의 헛소리를 목격하며 내가 그만 부끄러워져 그 자리를 서둘러 일어나고 싶어 고개를 떨구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말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말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하여 그런 사람을 곁에 두었을 때의 민망함은 내 몫이 되고야 만다.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일상적이지만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기묘하고도 어려운 대상이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우리는 적당히 느끼고 스스로 깨우치며 말을 하고 살아간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상처를 덜 주기 위해 성숙해져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바라보며 산다. 그리고 그 상처는 주로 사람에게서 받을 때가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누구도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는 신기하리만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것이 어떤 정신적 보호 기제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에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프로그래밍 되어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에 속상하거나 상처 받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내가 누구를 속상하게 하고 상처를 줘서 미안하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났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은 때때로 정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영향력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부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언제나 말을 내뱉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는 자세를 습관화할 수 있을 테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마도 평생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해져야 하고 성숙해져야 한다.
강해져야만 타인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말들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다. 왜냐하면 악의를 가지고 독설을 내뱉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당신이 그러하듯 우리는 보통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진다. 아니 심지어 상처가 되는 말이 아닌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내가 약해서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기 때문이든, 사람들이 본디 예민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없기 때문이든, 어쨌건 나를 말로 죽이려고 드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만 아니라면 내가 스스로 강해지는 것으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방패만 가지고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아무리 나의 멘탈이 강해져서 타인의 말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한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나의 잘못 나간 말이 부메랑이 되어 더 강력하게 나에게 타격을 주기도 한다.
성숙해져야지만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내 의지대로 다루어낼 수 있다. 생각과 다르게 나가는 말은 나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인생에 있어 무르익은 성숙함의 과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컨트롤 해 낼 수 있는 능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기를 조절해 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곧 성숙해졌다는 명확한 증거이자 본인만이 확인 할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아 도달이며 그것은 곧 인품이라는 말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피해 입지 않고 가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강해지고 성숙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