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의 시대

듣기 중독은 위험해

by 정 호
바야흐로
강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의가 쏟아져 내린다. 온라인 강의야 이미 20여 년 전 컴퓨터가 가정에 보편화되던 시점부터, 각종 입시 학원들이 앞다투어 인강을 찍어냈기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요 근래 인터넷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강의의 종류는 그야말로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양해졌다.


수많은 플랫폼들에서 매일 새로운 강의가 개설된다. 그렇게 개설된 강의는 이미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또 다른 기존의 플랫폼(페이스북, 인스타, 틱톡, 유튜브 등)에 자신들의 플랫폼을 광고한다. SNS는 그것을 이용하는 대중에게 맞춤형으로 광고를 공급한다.


내가 책 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빠르게 캐치해낸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아웃사이더의 노래 가사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책 쓰기 특강 광고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띄워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원데이 클래스 혹은 1강에 10분 내외로 제작되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강의 시장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구나,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말이 정말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내가 그 소비의 주체가 되어 내 돈을 내고 강의를 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왜냐하면 일단 유튜브에만 들어가 봐도 돈을 내지 않고 어지간한 것들은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돈을 지불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가 얻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이는 강의가 아니라면 결코 지갑을 열게 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처럼 나의 굳은 의지를 확신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페이스북의 광고 알고리즘 앞에 나는 너무도 쉽게 굴복해버리고 말았다. 목마른 자 앞에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이 놓여 있는데 어찌 벌컥벌컥 마시지 않고 버텨낼 재간이 있으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경제 분야에서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라 사실 세상만사 거의 대부분에 적용되는 원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니즈가 이렇게 쉽게 간파당해 경제논리에 굴복하고 마는 모습과 스스로 마주하게 됐을 때, 나는 앞으로 합리적 소비와 비합리적 소비를 구분해내기 힘들어지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비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보는 편이 어울릴만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소비라는 것도 역시 개인의 필요나 감성에 따라 진행되는 메커니즘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누가 무슨 기준으로 과소비, 충동구매, 과시소비라는 용어로 매도할 수 있을까. 타인의 니즈를 어떻게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감정이라는 것은 본디 파악이 불가능한 온전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그렇게 온라인 책 쓰기 특강을 결제하고 난 뒤 20강짜리 강의를 이틀 만에 완강해버렸다. 말이 20강이지 1강에 20분이 채 안되었기 때문에 오롯이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5시간 정도 되었을까? 원데이 클래스라고 불러도 무방할만한 강의를 듣고 난 뒤 느낀 흔해빠진 소회는 다음과 같다.


듣는 것은 쉽다


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정석적인 답변은 바로 복습을 해서 네 것으로 만들라는 말이다. 이것은 공부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공통으로 적용되는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가만히 듣고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함에도 스스로 무언가를 개발하며 깨달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복습을 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낼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한다. 나도 쉽게 그런 말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행위가 가능할 때 우리는 그런 말을 쉽게 하지만 그런 행위가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안갯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언제 가능하고
언제 가능하지 않은가


우리는 한 번이라도 해봤던 것을 다시 시도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느끼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시도할 때에는 마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독립출판, 기획출판, 전자책 등 책을 내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홍수처럼 쏟아진다. 책을 내려면 일단 양을 어느 정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1년 간 나의 글을 틈틈이 쓰며 양을 채우는데 집중했다. 200 꼭지 정도의 양이 채워진 지금에 와서 이제 슬슬 출판의 과정을 알아볼까 싶어 그간 저장해두었던 출판기와 관련된 글을 하나씩 읽어갔다.


비슷한 내용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반복에 지쳐있던 그때 귀신같은 알고리즘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 쓰기 특강 광고를 나에게 띄워주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몇만 원의 강의비를 입금하고 그렇게 책 쓰기 특강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만일 내가 한 권이라도 책을 내본 사람이라면 책 쓰기 특강을 들을 필요가 있었을까?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갈 때에는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출판이라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에 대해 알아가자니 막연함과 잡히지 않는 방법에 대한 갈증 때문에 기꺼이 내 주머니에 돈을 털어 강의를 구입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노량진이나 강남 유명 학원에 가서 일타강사의 직강을 열 시간씩 들으며 나는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시간이 있느냐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 그것은 가장 쉽게 마음에 안식을 준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부여하여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 발자국을 내딛는 디딤돌이 아니라 끊임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도움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열매를 맺는 일에는 내 땀과 내 품을 들여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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