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것
"애가 요즘 사춘기가 왔는지 통 말을 안 듣고 대들기만 해서 죽겠어요"
"근본이 착한 아이이니 부모님께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 진심으로 아이를 대하는 모습만 보여주신다면 아이가 언젠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순간이 올 거예요. 믿고 기다리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자녀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한마디를 거든다.
"내가 착한 지, 나쁜 지 어떻게 알아요?"
세상에는
알기 때문에 믿는 것과
알지 못해도 믿는 것이 있다.
알게 되면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인즉슨, 알게 될 때에만 시야가 넓어진다는 의미이다. 오직 알고 난 후에서만 우리의 인지력은 상승되고 그때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과학의 세계이며 인과의 세계이자 합리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앎이라는 것은 이처럼 어떤 인식의 범위를 확장한다. 이것은 지식 확장의 배경이 될 때도 있고, 육감이나 통섭과 같은 어떠한 통찰력 같은 것의 근원이기도 하다. "내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라고 묻는 아이의 물음에, 너를 알기 때문에 믿는다는 방식으로 대답을 해 내려면 필연적으로 "너를 알고 있다"라는 것의 근거에 대해 설명을 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설령 어렵사리 어떠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한들 아이에게서 동의를 얻어 내기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 자명하다. 왜냐하면 "네가 나를 아느냐"라는 질문에는 이미 기본적으로 반감의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은 합리성과 인과에 따른 과학적 법칙보다는, 어떤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 그리고 무한한 지지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더 많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과연 절대자를 본 적이 있어서 그것을 믿는 것일까? 알기 때문에 바라보게 되는 세상과 달리 종교의 세계는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믿음을 갖고 몰두해 나아가는 세계이다.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있다는 과학의 세상 정 반대편에는 믿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있다는 종교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믿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종교나 사랑과 같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정성을 들여 오래도록 무언가를 기원했더니 그것이 정말로 이루어졌다던지, 어떤 신적인 계시를 꿈이나 소리 혹은 어떤 상징을 통해 인식하게 되었다던지 하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이러한 것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확증편향이나 자기 합리화, 혹은 정신승리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의 옳고 그름이나 과학적 입증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과학의 삶과 종교의 삶을 양쪽에 두고 옳고 그름을 다투는 일은, 좌파와 우파가 사이좋은 사돈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어느 한쪽 영역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살아갈 것인지를 명확히 구분을 지으려는 삶도 있겠지만 명확히 구분 짓지 않고 양쪽의 세상을 느슨하게 넘나들며 조금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도 있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종교와 같을 때가 많다. 이는 느슨하게 양쪽을 왔다갔다 할 때 보다는 명확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다시 말해 알지 못하더라도 믿고 나아가는 세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날 알아요?"라는 자녀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을 할 수 있겠다.
너는 부모에게 종교와도 같은 존재란다. 너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심지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저버리거나 무시하거나 등질 수 없는 존재, 절대로 절대적이며 나의 모든 것을 기울여 정성과 성의를 쏟을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네가 현재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선함과 올바름의 세상으로 네가 다시 되돌아오리라 믿고 싶고, 또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 이런 진심 어린 믿음을 너에게 품고 있는 사람이 부모라는 것을 네가 깨닫고도 네가 언제까지 계속 엇나갈 수 있을까? 끝까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