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변화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이끈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의 변화가 하나 둘 느껴진다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2차 성징의 징후들이 포착되는 순간이 아마도 자기 몸의 변화에 대해 최초로 인식하게 되는 지점이 아닐까. 사춘기가 끝난 이후 신체상의 어떤 도드라지는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20여 년의 세월을 지내다 보니, 나의 몸이 늙어간다거나 아니면 강해졌다거나 하는 느낌을 꽤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나의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검정의 머리카락 사이로 하나씩 도드라져 나오는 하얀색의 머리카락을 마주할 때나,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고 술과 안주까지 퍼먹어도 절대로 늘지 않던 몸무게가 하루 두 끼의 식사와 급격히 줄어든 술자리에도 불구하고 앞자리가 갑작스레 바뀌었음을 깨달았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소화가 안된다는 말은 80살 즈음이나 되어야 느껴볼 수 있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웬걸, 더부룩함과 느린 소화능력이 벌써 체감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면서 앞으로 또 어떤 변화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칠까 싶은 생각에 옅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문득 차에 올라탔다가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아니 나이가 어느 정도 지긋한 중년의 어른들, 소위 아저씨라 불리는 남성들의 차량에 탑승했을 때에 맡아봤음직한 어떤 퀴퀴하고 조금은 묵은 듯한 공기가 향수와 섞여있는 듯한 그런 종류의 냄새가 내 차 안에서 나다니! 그것은 흰머리와 처음 조우했을 때나 소화가 안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발견이었다.
나한테도 아저씨 냄새라는 것이 나기 시작하는 것일까? 아직 서른 중반인데 조금 빠른 감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서른 중반이면 이미 누군가에겐 충분히 아저씨라고 불릴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수긍의 의미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운동에 열중하며 한창 땀이 줄줄 흐를 때는 땀 냄새가 나기는 해도 그리 심하지는 않다. 문제는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가는 동안 땀이 식으면서 그 은은했던 냄새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땀냄새로 한 단계 진화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자신의 습관이나 단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인지하기 힘들 듯, 땀 냄새 역시 그러한 종류의 문제였다.
그간 나는 나에게서 땀 냄새라는 존재를 특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낯선 땀 내음은 콧속으로 훅 하고 들어와 여전히 20대 청춘인 줄만 알았던 나의 정신세계에 강력한 기습공격을 한 방 먹였다.
그것은 처음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느낌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생에 있어 변화의 폭이 큰, 어느 구간을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체로 인지되는 것만이 진짜 나의 세상을 구성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느껴지는 일련의 신체적 변화들은 나를 새로운 인식의 세상으로 이끈다.
새로운 인식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나를 이끈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상황 인식과 대응들,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나의 상태와 역할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대처할 것은 대처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은 꽤 아름다우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나의 늙어감에 대한 변화는 아마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젊은 연예인들이 TV에서 노년의 모습으로 분장을 하고 자신의 배우자와 마주 보는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문득 저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런 체험은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과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낸다.
복잡다단한 여러 종류의 감정이 휘몰아칠 테지만 최후에 그 모든 감정들을 아우르며 뒷정리를 해내는 감정은 아마도 "수긍"일 테다. 결국 어느 지점에 가서는 받아들여야만 완숙함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싫다고 징징거리는 모습, 받아들일 수 없어서 화를 내는 모습은 결코 성숙한 삶의 태도가 아니다. 변화를 인지하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만이 삶과 진지하고 정직하게 대면하는 태도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