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그 확실한 행복

확실해 보이는 것에 도달하기 어려울 때 느껴지는 괴로움

by 정 호
몰입은 황홀하다.


아무것도 나의 정신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온전히 어떤 한 가지에 골똘히 빠져드는 현상을 가리켜 우리는 몰입이라 말한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그의 저서 FLOW에서 몰입에 대하여 어떤 행위에 깊이 빠져들어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이동, 더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 잊게 되는 심리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몰입 경험은 행복을 위해 필수적이다. 단순히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론으로 몰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행복을 위해서도 몰입은 필요하다.


일정 시간 이상을 달리면 숨이 차고 무거웠던 몸이 어느 순간 가벼워지며 더 이상 숨도 차지 않게 되어서 머리와 정신이 맑아져 달리는 것이 힘들지 않고 즐거워지는 경지를 가리켜 "러너스 하이"라고 한다. 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달리기에 중독된다. 이는 완벽한 몰입이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에까지 어떤 특별한 화학적 작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다른 경우에도 몰입은 비슷한 형태로 발현된다. 우리가 무언가에 완벽히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의식과 인식이 사라진 채 그 몰두하는 대상과 혼연일체가 됨을 느낀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는 사람은 몰입이 주는 즐거움에 중독되어 자꾸만 몰입의 세계를 그리워하게 된다. 독서나 운동, 음악 미술 체육으로 대표되는 어떤 예술적 작업의 과정이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때때로 이런 완전한 몰입의 경지에 도달한다.


몰입 경험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작용하는 객관적 세계로 대표되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주관의 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을 평소와 다르게 느낀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 역시 몰입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하루를 한 시간처럼 느낀다. 몰입의 세계에 들어선 사람은 시간조차 넘나드는 셈이다. 이것이 몰입 경험을 자주 할수록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이다. 몰입을 자주 하는 사람은 삶이 지루하지 않다. 너무도 빨리 흐르는 시간 탓에 하루하루가 아까울 따름이다.


좋아하는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완벽한 몰입의 경지에 들어가 감성과 영혼의 세계에 머물고 싶다. 영화를 보다가 흠뻑 눈물을 흘리고 싶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온갖 미디어와 매체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며 우리의 정신을 흐트러뜨린다. 개인적인 연락들과 지인들의 소식들은 또 어떠한가.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온갖 일상적인 영역의 일들 역시 우리의 정신을 가만두지 않는다. 집 안에서 뛰노는 귀여운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이 잊히기도 하지만 몰입에 대한 생각 역시 함께 잊히기 쉽다.


그렇다면 이런 외부의 물리적인 방해 요인들만 제거한다면 우리는 쉽게 몰입에 다가설 수 있을까? 아쉽게도 물리적인 환경 이상으로 우리의 정신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몰입 방해 전자파가 있다.


눈치와 체면 그리고 환경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천박한 일로 규정했다. 즐거워도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아야 했고, 뛸 듯이 기쁜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자중해야 했으며,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픈 일을 겪어도 담담한 척을 해야만 어진 사람이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처럼 타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예절이라 칭송받는 삶의 방식은 여전히 우리의 DNA 깊은 곳에 뿌리 박혀, 감정보다 이성적인 것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고, 그것이 보다 우위에 속해 있는 것이라는 프레임으로 감성적인 사람, 감정적인 사람을 어린아이 취급하곤 한다. 하지만 감정만큼 솔직하고 삶의 진실에 가까운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체면과도 연결된다. 교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부모는 그래서는 안된다. 남자는 여자는 그래서는 안된다.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어떤 외부의 기대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성별이나 특정 직업군, 종교, 나잇대에 따라 각각 기대되는 예티켓과 매너들이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매너가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도할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세상에 체면치레를 하느라 정작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체면을 잃어가는 짐승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라온 과정은 우리에게 어떤 틀을 부여한다. 오랜 기간 일정한 방식으로 양육되고 그 방식에 따라 행동해 온 사람들이 갑자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전환시키기는 몹시 힘들다. 억제하고 절제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갑작스레 방탕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기는 힘든 법이다. 패턴화 된 습관은 정신마저 지배하기 때문이다.


모든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겠다는 어느 만화의 이 유명한 짤은 그래서 대중의 인기를 끌어모았을 테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세상의 모든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때에서야 비로소 나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몰입은 행복해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세상엔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것이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