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을 걷다가
천변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통행 방향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도 보행자도 자전거도 모두 우측 통행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변에 나가 산책을 할 때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좌측통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많은 사람이 좌측통행을 하고 있기에 우측으로 걷다 보면 마주오는 사람들을 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틀리지 않았는데 왜 내가 비켜서야 되는 것인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간혹 신기하게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자전거가 따르릉따르릉 경적을 울리며 손을 휘저으며 비키라는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억울함과 황당한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면 순간적으로 이성의 끈을 놓은 채 일부러 마주오는 자전거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미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좌측통행을 하는 사람이 하도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천변을 걸을 때는 예외적으로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나 내가 모르는 법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 서칭을 해본 결과.
201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보행자들은 좌측통행 규칙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보행자들이 우측통행을 명시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좌측통행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더 많아 보였다.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씨앗이 한순간에 나무가 될 수 없고 아기가 갑작스레 어른이 될 수 없듯이 변화에는 일정한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 안에는 특별히 커다란 변화의 폭을 마주하는 과도기라는 지점이 존재할 때가 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기 부족한 시간이었을까. 여전히 과도기적 구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변한다는 것은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규정이 바뀐 지 1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전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정된 규정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좌측통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눈에 띄는 행동, 혹은 트러블이 발생할만한 상황을 만들기 싫은 탓에 알면서도 좌측통행을 고수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설마 알면서도 그저 귀찮다거나 기존에 해오던 습관이라는 이유로 좌측통행을 고집하는 독불장군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세상은 넓으니
첫 번째 이유라면 무지함의 결과요
두 번째 이유라면 용기가 부족한 탓이며
마지막 이유라면... 그건 그냥 나쁜 놈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지하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능력과 시간 모두가 부족하기만 한 유한한 인간이기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어느 영역에 있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 걸쳐 그렇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용감하지 못하다. 그래서 소시민적인 일반 대중은 항상 영웅을 갈망한다. 영웅은 언제나 귀하기 때문이다. 영웅은 용감하며 용감한 사람은 귀하다. 용기가 부족한 것은 개인의 탓이기도 하지만 나약하고 무력한 개인에게 항상 용감할 것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태생적으로 인간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용감하기 힘든 이유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무지하고 용감하지 못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핑계 삼는다고 해서 무지함과 용감하지 못함이 자랑스러워질 순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깨어 있어야 하고 바뀌어가는 세상을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영역에서 아무리 빛나는 성과를 이룩했다고 한들 우리는 언제나 모르는 것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무지에서 탈피하려 애쓰고 용감하게 바뀐 것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갈 때 과도기는 짧아질 것이며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줄어들게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