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목매던 그때 그 시절
식스센스급 반전
반전이 있는 영화를 수식하는 표현으로 영화 식스센스를 활용한 수사를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식스센스와 디 아더스 류의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은 엄청난 즐거움을 주었고 그로 인해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 한동안 반전이 있는 영화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 영화들을 볼 때면 기필코 반전을 맞추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느라 영화 자체에 몰입해서 장면을 느끼고 마음으로 감상을 하기보단 반전에 대한 단서를 모으느라 되지도 않는 머리를 굴려가며 주어진 정보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기 바빴다. 이는 영화를 감상했다기보다 수식을 푸는 듯한 과정으로 영화를 체험하고 있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해서 결국 반전을 맞추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맞추었다는 뿌듯함이 찾아왔지만 뭔가 모르게 힘이 빠지고 허무한 듯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하물며 그런 노력 끝에 반전을 맞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영화를 잘 보고 나와서 불필요한 자괴감 혹은 무력감에 빠지기까지 했다.
반전을 맞추겠다는 덫에 걸려 허우적대느라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셈이다.
우리 인생도 비슷하다. 우리는 대부분 목표를 정해두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간다. 물론 목표는 중요하고 삶을 견인하는 커다란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목표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목표가 인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생이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어버리기 쉽다.
인생은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다. 우리는 삶에 있어 늘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왜 돈을 버는가, 왜 승진을 하려 하는가, 왜 더 큰 집에서 살려고 하는가, 왜 공부를 하는가, 왜 글을 쓰는가, 왜 사랑을 하고 왜 자식을 키우며 왜 행복해지려 하는가.
이런 질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나만의 답을 내어놓지 않으면 세상이 정해둔 정답을 나의 정답인 것으로 착각하며 인생을 허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가진 자의 배부른 소리도 아니요, 못 가진 자의 정신 승리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찾아내야만 하는,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을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자신만의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에게 효과도 의미도 없는 가짜 정답에 시간과 정열을 쏟아붓느라 인생을 허비한다. 이는 마치 변비에 걸려 가슴까지 똥이 차오른 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급한 대로 해열제를 먹이고 안도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효과도 없고 인과성도 없는 처방을 해놓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약의 성능에 대해 잘 알아보지 않은 채 무작정 일단 약이라면 아무거나 덥석 집어먹어놓고 진짜로 해열제가 변비를 낳게 해 줄거라 믿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약의 효과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아무거나 집어먹는 이런 식의 행동은 인생을 고민하지 않는 태도와 같아 보인다.
진리는 언제나
진부한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반전이라는 결과에만 목을 매다 보면 과정을 놓치기 쉽다. 정답에 목을 매다가 주인공들의 서사와 황홀한 풍경과 아름다운 배경음악을 놓치지 말자. 반전영화를 보다가 아름다운 주인공에게 시선을 빼앗겨 주인공의 다른 필모그래피를 살펴보게 될 수도 있고, 영화의 한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그 장소에 가보고 싶어질 수도 있을 테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려는 태도일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나만의 정답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진짜 삶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