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검색하여 나를 찾아왔는가

너와 나는 어디쯤에서 맞닿아 있을까

by 정 호

인공지능의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그 속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빠른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인공지능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핵심 기술이 빅데이터 분석이다. 빅데이터 분석이란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다양한 목적으로 분석, 편집, 범주화하여 사용하는 기술을 뜻한다.


요즘 웬만한 플랫폼들은 기본적으로 빅데이터 분석을 제공한다. 유튜브를 비롯한 대부분의 콘텐츠 제공 플랫폼은 나의 검색 데이터를 활용하여 내가 좋아할 만한 연관 동영상을 추천해주고 토익이나 공무원 시험을 대비하는 학습 플랫폼에서는 내가 자주 틀리는 문제들을 분석해 내 약점을 보완하는 연습 문제들을 제공한다. 쇼핑 플랫폼에서는 어찌나 내가 필요한 물건을 정확히 추천해주는지 십 년 전 세상에 비하면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브런치 역시도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내 브런치를 방문한 사람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입되었는지 범주화시켜 보기 쉽게 안내한다.


구글, 다음, 카카오, 네이버 등의 검색 엔진을 통해 들어왔는지,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스토리와 같은 SNS를 통해 들어왔는지, 브런치 앱을 통해 내가 쓴 글을 직접 클릭해서 들어왔는지, 이렇게 세부적으로 분류하여 제공되는 유입 경로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검색을 통해 들어온 사람이 많은가 하면, 또 다른 날엔 카카오톡 탭이나 다음 메인에 글이 노출되어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입자 숫자가 찍힐 때도 있고 어떤 날은 SNS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SNS를 통해 사람들이 유입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문득 생각에 잠기게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검색을 통해 내 브런치로 유입되는 사람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특정한 검색어를 통해서 나의 브런치에 발을 담근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그는 왜 이런 검색어를 검색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쓴 글의 제목을 거의 그대로 검색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면 내 글을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사람이 그 글을 다시 한번 찾아 읽고 싶어져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제목을 더듬거려 검색해서 들어온 것은 아닐까?라는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한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맙소사! 내가 쓴 글의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또한 놀랍고 반가운 일이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유입 검색어를 보다가 간혹, 내가 이 단어를 어느 글에서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떤 단어가 유입경로에 떡 하니 올라있을 때면 내가 어떤 주제의 글을 쓰며 이 단어를 썼을까, 이 단어를 검색한 사람이 원하는 정보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해줄 수 있었을까, 내가 활용한 단어와 그가 기대한 단어의 의미 사이에는 얼마 만큼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들이 솟구친다.


꾸준한 유입을 가져오는
특정한 단어들이 있다.


그것이 밝고 긍정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주로 우울함을 품은 단어인 때가 더 많다. 유입 검색어에 자살, 아련, 비통, 슬픔, 고독, 실업, 시련, 취업난 따위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날이면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을 오롯이 나를 위한 행위로 정의 내리고 그 정의에 따라 행동에 옮기고 있었는데 이런 단어들을 검색어로 사용하여 흐르고 흘러 나의 글을 읽으러 온 사람들은 어떤 마음 상태였을까, 그들에게 나의 글은 어떤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일까.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쓰며 영향력을 운운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불행은 톡톡 튀는 놈이어서 아주 작은 부싯돌만 만나도 폭탄처럼 터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항상 좋은 말과 좋은 생각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행과 행복은 때때로 동시에 발생하기도 하고 교차적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그 둘 간에는 어떤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불행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부분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모든 행위는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작은 노력들이다. 우울하고 힘든 소리를 힘없이 툭툭 내뱉는 것도, 빌어먹을 육두문자를 씹어 내뱉는 것도, 모두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니겠는가.


비록 우울한 마음에 이리저리 구르며, 무심하게 쌓여있는 글 더미들 사이를 헤집다가 나의 우울한 부분과 맞닿아 버린 당신이지만 그것 역시도 삶을 지탱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시 슬픔에 빠져도 좋다. 그런 후에 다시 또 고개를 힘차게 휘젓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바닥에 닿아본 사람만이 바닥을 차고 올라올 수 있다는 말처럼 한없이 침잠하는 시간에도 반드시 끝은 있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