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꿈도 소중하다

너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by 정 호
나는 나중에 꼭 소설을 쓸 거야


수능과 함께 십 대를 허겁지겁 마무리 짓고 이십대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서투르게 넘어가던 무렵, 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보다 고작 삼 년을 더 산, 한 남자를 만났다.


겨우 나보다 삼 년을 더 살았을 뿐인데 그때의 내 눈에 그는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노인처럼 보였다. 스물셋의 화창한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연륜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그의 말투와 태도, 그것은 내가 아직 어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느껴졌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일정 부분은 그의 삶에서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제대로 된 보살핌과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가난은 말할 필요도 없는 옵션이었다. 그런 그가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벌써 아르바이트 경력이 7년 차에 접어든다는 이야기를 해맑게 웃으며 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그때 비겁한 안도와 품이 들지 않는 값싼 동정심을 품었던 것 같다.


석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그때 12시간을 일했고 그는 열 시간을 일했다. 한 공간에서 그토록 긴 시간을 함께 붙어있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허공에 떠다니는 시간과 무겁게 밀려오는 피로함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악덕 사장에게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았던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수많은 진상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 매출을 올리기 위한 점주들의 꼼수에 관한 이야기, 손님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다녀온 이야기 등, 그는 주로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가며 새벽녘 손님이 빠진 시간대의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무료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피로감을 적절하게 버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 그는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된다는 듯 자신은 나중에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그에게만 보이는 미래를 바라보듯, 멀리 떨어진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두 눈을 찡그리며 허공을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면 한 번 싱긋 웃고는 테이블을 정리하러 나가곤 했다.


내 나이 스물, 그의 나이 스물셋,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일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멈춰 서서 호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이던 그의 모습을 보며 그저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다. 손님이 한창 몰리는 초저녁 시간대에 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가끔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한창 바쁠 때 손이 모자란다는 것은 나의 일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를 당장 적어내고야 마는 그의 행위의 당위와 이유를 스무 살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꿈을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그때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 그때 그를 조금 더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때 그가 하던 행동을 이제는 나 역시도 하고 있다. 생각은 정말로 잠시 피어올랐다가 금세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생각은 때때로 꽤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들을 모아 내가 무언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생겼기에 더욱이 순간의 생각을 소홀히 여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저 조금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했던,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꿈을 비웃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그와 같은 꿈을 꾸며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꿈은 아이들만 꾸는 것이 아닐 텐데 그때의 나는 왜, 그의 꿈을 가벼이 여겼던 것일까.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우연히 당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로 근처를 지나다가 멀리서 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는 아직도 소설가의 꿈을 꾸고 있을까? 어쩌면 소설책을 몇 권 써냈을지도 모르지,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들 그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꿈은 아이들만 꾸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