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베란다 바닥이 미세하게 들뜨면서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가 구부러지며 힘겹게 버티는 듯한 소리를 낸다.
여름내 뜨거운 기온의 영향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메우고 있는 다양한 자재들은 서로 더욱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다고 으스대며 부풀어 오르는 시합에라도참가하고 있는 듯하다가도, 겨울의 찬 공기가 사르르 흐르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움츠러들고 만다. 매년 반복되는 이 확장과 수축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목재로 된 바닥이나 베란다와 같은 부분이 들뜨거나뒤틀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팔만대장경과 같은 예외 사례가 아니고서야 보통은 뜨겁고 차가운 공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균열과 틀어짐이 생겨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만다.
문득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영화의 내용이나 피렌체 두오모 성당보다 더욱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저 영화의 제목이었다.
우리는 뜨겁거나 차가운 것을 좋아한다. 그 둘은 모두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위태로움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삶을 대하는 자세에 관해서도 우리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뜨거움과 차가움에 홀린 듯 이끌린다.
관계란, 삶이란, 뜨거움과 차가움 그 중간 어디 즈음에 있어야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미지근하다는 단어는 단어조차 왜인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만 같다. 성의 없어 보이고, 시들어버린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달까.
그렇다면 미지근하다는 단어를 대체할만한 좋은 단어는 어디 없을까. 중도, 중간, 타협, 중탕, 미온적인, 조심스레, 신중하게... 확 마음에 드는 단어가 마땅히 떠오르질 않는다.
하지만 중간이라는 것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디 즈음에 위치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이건 친구건 애인이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래도록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말을 할 때가 많다.
꼭 이성간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뜨거운 관계는 서로의 열기로 인해 머지않아 메마름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열정적인 관계 속에서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그것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길게 유지해 내기 어렵다.차가운 관계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쿨함으로 겉을 아무리 한껏 치장한들 우리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기에 결코 완벽히 쿨해질 수 없다. 쿨함 안에서 잠깐의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목욕탕에 가면 뜨거운 물에 잠시 몸을 담근다. 뜨끈함에 피가 돌며 만족스러운 노곤함이 온몸을 감싸지만 곧 숨이 막혀 오래 버티기 힘이 든다. 그러고 나면 곧장 냉탕을 향해 걸어간다. 살이 아려오는 차가운 물이지만 순간의 시원함과 짜릿함이 그토록 경쾌할 수 없다. 하지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얼얼하게 마비되어 가는 몸뚱이는 다시 피난할 곳을 찾아간다. 냉탕과 온탕 사이, 적당히 따듯하거나 적당히 시원한 물, 목욕탕에서 인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