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유한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아서.

by 정 호

아이와 욕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난 뒤 욕실 청소를 하던 중, 변기 뒷부분을 청소하기 위에 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바짝 엎드렸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평소 눈에 보이는 부분만 솔을 이용해 슥슥 문질렀을 뿐 변기 아래와 뒤쪽에 굴곡진 부분에는 손이 닿지 않았던 모양인지. 까맣게 끼어있는 묵직한 물때를 마주하며 잠시 영혼이 가출하는 듯 멍한 느낌을 받았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의료기기 체험 부스가 있기에 잠시 누워서 피로를 풀고 있었다. 노곤해짐을 느끼며 가만히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색이었던 백화점 조명이 미세하게 푸른색을 띄었다가 잠시 후엔 미세하게 붉은색이 섞인 상태가 되기를 반복하며 주기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항상 밝은 주광색을 띄고 있는 줄만 알았던 백화점 조명이 이렇게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백화점에 누워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볼 기회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평생 알지 못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화 슬램덩크의 등장인물 중 신현철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떡판 고릴라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이 캐릭터는 중학생 시절엔 키가 작아 가드나 포워드와 같은 스피드와 테크니컬 한 포지션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와 급격하게 키가 성장하여 서장훈과 같은 센터 포지션에서 활약한다. 그는 농구선수의 모든 포지션을 경험하며 넓은 시야와 포지션별 장점을 모두 합쳐놓은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선수로 성장한다.


밑에서 봐야만,
각도를 틀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고정된 시선과 자세로 세상과 마주한다. 그것은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지위나 부여된 역할 때문일 수도, 개인적 경험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다는 것은 결함이 없다는 것이고 무결점의 완벽함을 철학에서는 "무한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때가 많다. 철학에서 신을 설명할 때 완벽하다고 정의 내리는 근거는 유한하지 않고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무한한 존재는 과거와 현재 미래 어디에나 존재하며 모든 방향의 시야각을 가지고 있어 고정된 시선을 갖지 않는다. 그야말로 전지전능,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완벽함이 곧 무한함과 동치 되는 의미로 사용된다면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유한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유한하다. 생명이 유지되는 기간이 그렇고, 인식의 한계가 존재하며, 수많은 모순적 상황에 노출되어 허우적거리다 일생을 마친다. 그레빌 남작의 카엘리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 태어났으나
육체에 매인 존재이며

허영 속에서 태어났으나
허영을 금지당한 존재이며

병든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건강하게 살아갈 것을 명령받은 모순적 존재이다.


인간은 유한하며 거의 대부분 그 유한성에 굴복하고 만다. 특히 유한함의 실체가 눈에 보일 때 더욱 그렇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불치병 환자나 퇴직을 권고받은 직장인에게 기존의 가지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의 유효기한은 만료가 되어버리고 만다. 야망은 무의미하고 계획은 부질 없어진다. 애초에 무한하지도 않았으면서 우리는 무한함을 가정하고 살아간다.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한함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때로는 기어코 인식되어버리고 마는 유한함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려 애쓰기도 한다.


유한하다는 것은 끝이 존재하며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유한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위로와 가능성을 준다.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각자의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그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안아줄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된다. 때로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다. 그것은 기존의 무리에서, 기존의 생각에서, 기존의 경험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공감이 가능하다. 무한하며 완벽한 존재는 어쩌면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결핍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부족했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갈증이 없는데 물을 찾을 리 없고, 공허가 없는데 안락을 추구할 리 없다. 유한성은 양날의 검이다. 유한하기 때문에 인식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와 동시에 유한하기 때문에 그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