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있는 사과쿠키라는 이름을 가진 편의점에서만 파는 쿠키가 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수행하던 시절 근무지 안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이 쿠키를 참 많이도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설탕을 잔뜩 녹여 밀가루에 섞은 듯한 맛에 사과 그림이 그려져 있어 사과 맛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만약 포장지에 사과 그림이 없었다면, 사과 쿠키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사과맛 쿠키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왠지 입에 맞아 가끔 편의점에 들러 하나씩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게 만들었던 그 쿠키는 전역과 함께 그 시절의 다른 기억들과 더불어 소리 없이 조용히 잊혀갔다.
그렇게 잊고 있던 쿠키와 그 시절의 기억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 다시 한번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들이 좋아하는 뽀로로 음료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찾던 와중 갑작스레 눈에 들어온 사과맛 쿠키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시절의 풍경 속으로 나를 순식간에 데려다 놨다.
특별히 각인될만한 기억이 있었거나 쿠키와 감정이 연결 지어질 만한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시절에 그 쿠키를 자주 사 먹었던 것이 무의식 속에서 쿠키와 사회복무를 하던 시절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를 생성해두었다가 쿠키를 보니 자동적으로 그 시절의 기억까지 고리를 타고 딸려 나온 셈이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예컨대 뷰티 인사이드나 유체 이탈자와 같은 영화처럼 자고 일어나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는 상황에서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떤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기억일 테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이자 뿌리, 그런 종류의 것으로 기억 말고 다른 것을 떠올려내기 힘들다.
쿠키를 보고 어느 한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나답게 구성하는 요소, 즉 하나의 스토리가 내 삶 위에 덧씌워졌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감사한 일이자 행복한 일이며 살아가는 이유와도 같다.
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자신을 증명해낼 길이 없다. 살아오며 어떤 사건들을 품어내며 살아왔는지, 어떤 이들과 마주했고 어떤 이들과 등을 돌려왔는지, 어떤 때 기분이 좋고 어떤 때 기분이 나쁜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스토리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된 데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이야기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잠시 붙잡아두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나의 스토리이며 나를 설명해주는 유용한 도구이니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김국환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평생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다가 간다. 이것은 외로운 일이며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다. 아무도 제대로 알 수 없기에 인간은 결국 모두 고독할 수밖에 없으며 같은 이유로 누군가에 대해 감히 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례함이자 가벼움이다.
그래도 평생을 바쳐 바라보다 보면 나 한 사람쯤은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어본다. 사과쿠키를 바라보며 내 안의 기억 한 조각과 마주하게 될 때,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된다. 그렇게 무의식의 조각들을 의식의 세계와 하나하나 조응시켜가는 과정이 바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나 하나 알아가기에도 이토록 오랜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데 남에 대해 대체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