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사수하라

생존과 진화의 필수 요소

by 정 호
유성생식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유전자 세트가 타 개체의 것과 섞여 유전적으로 다른 자손이 만들어지는 생식 유형.

무성생식
한 생명체가 다른 성의 생명체와 유전정보를 교환하지 않고도 자신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만드는 번식 방식

-네이버 지식백과-


지구에는 1천 종 이상의 바나나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 캐번디시라는 1종류의 바나나가 전 세계 바나나 시장의 5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나무의 키가 작아 태풍에 강하고 살충제를 살포하기 쉽다는 생산 과정상의 유리한 조건과, 뿌리를 잘라 옮겨 심으면 빠르게 번식이 가능하여 단기간에 대량생산을 할 수 있었고, 무성생식이라는 생식유형의 특성상 병충해, 기후, 숙성시기 등 다양한 변수를 예상하여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캐번디시의 소비량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규모의 경제에 의해 바나나의 가격은 더욱더 내려갔다. 다른 생산자들은 굳이 다른 종류의 바나나를 생산할 이유가 없어졌다. 충분한 시장이 형성되었고 손쉬운 방식이 이미 공개되어있는 마당에 굳이 경쟁력도 없는 어려운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나나 시장에서 다양성은 슬그머니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유성생식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번식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무성생식은 예측이 가능하여 단기간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전 세대와 완전히 동일한 유전자가 계승되기 때문에 변화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문득 거대 자본이 시장을 장악하는 모습이 무성생식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과정을 거쳐 제조된 제품들이 같은 매장에서 같은 가격에 전국 어디서나 팔리고 있는 것.


다시 말해 프랜차이즈가 바로 그것이다.


꽤나 훌륭한 상품성을 가지고 있고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제품과 가격층을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 최상급의 품질을 보장하는 제품들은 100년 전통의 맛집, 수제 맞춤정장, 장인들의 정성이 한 땀 한 땀 들어간 명품가방, 특정 몇 명을 위해 주문제작이 들어가는 물건들처럼 일괄 생산, 대량생산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다양성의 세계에서만 구현될 수 있다.


농산물 시장에 진출하는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유전적으로 손질된 무성생식이 가능한 씨앗을 마켓 주변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쉽게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규모 생산자들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품종을 버리고 거대 자본에게 이식받은 씨앗으로 재배에 성공한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 다양한 생식 방식을 통해 재배되던 토종 씨앗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거대 자본에 의해 배포됐던 씨앗은 한번 수확하고 나면 다음 해엔 씨를 뿌릴 수 없도록 유전적으로 손질이 되어있었다. 소규모 생산자들은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최초 제공자의 씨앗을 계속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이것이 진실인지 괴담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든 소멸에 가까워지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을 주는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다양성은 멸종에 대비하기 위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다. 계속해서 세대를 거듭하며,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유전자를 재생산해내며 언제 다가올지 모를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적금이든 펀드든 한 분야에만 투자하지 말 것이며, 주식을 할 때에도 한 종목에 몰빵을 피하라는 말은 진리처럼 통용된다. 그래서 나온 상품이 펀드이고 etf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세균들도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낸다. 감기에 약이 없고 코로나가 쉽사리 잡히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누가 더 다양하냐 누가 그에 대한 대책을 더 확실하게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세균과 인간의 싸움에서도 투자의 세계에서도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같은 종이 모여있는 고국에서는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면서 낯선 이국땅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한 유전적으로 다양한 인종이 서로 어우러져 진화의 가능성을 확인하며 행복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해봤다.


우리가 근무하는 직장 역시도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있을 때 가장 조화롭고 균형 잡혀 있을 때가 많다. 특정 연령대의 동료들로 팀이 구성되어버리면 소통이 원활하고 추진력 있게 무언가를 몰아붙여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가지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반면 다양한 세대가 섞여있는 팀에서는 생각이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 있어서 다소 느리고 진행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무언가를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보다 용이하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다양한 직업이 존중받지 못하고 다양한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끝이 그리 밝지 않다고 봐야 할는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소수에 속해있는 것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 지속 가능한 관계, 지속 가능한 교육 모든 지속 가능한 것들은 다양성을 유지할 때에만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닐까


중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의 전환은 바로 이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다양성을 허용하는 곳에서만 생존은 가능할 것이며 한 단계 더 진화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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