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84명이다. 합계 출산율이란 가임기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인구절벽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한 가정당 길러내는 아이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출생아 숫자까지 들먹이게 되었다.
기르는 자녀의 절대적 숫자가 줄었기 때문인지, 시대가 바뀌어 부모의 양육관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공손하고 순종하라는 말을 듣고 자라온 아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어보니 그것이 개인의 행복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가르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착하고 바르게 살면 손해 본다는 시대적 분위기 때문인지 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섞인 결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2021년 현재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자녀나 제자가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주장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을 남들 앞에서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런데 주장이라는 단어 앞에 "자유롭게"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주장이라는 행위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과 같다.
주장은 왜 중요한가.역설적이게도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를 탑재하고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주장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주장을 하게 되면 자유에 한 발 가까워진다.이것은 닭과 달걀처럼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무한궤도와 같다.
주장이 어려운 이유는모두가 알고 있듯 타인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해 주장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타인의 반박과 부딪히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간에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계의 깨짐이 두려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비교적 자신을 확실히 드러내면서도 아는 사람들과 지내는 동안에는 자신을 적당히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관계의 깨짐을 넘어서 불협화음 자체가 싫어 모르는 사람이건 아는 사람이건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상황과 상대에 맞추며 자신을 감추는 사람도 있다.
오랫동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희미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생각을 통해 나의 의견을 갖는 것 자체를 오랫동안 무의미한 행위로 스스로 규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주장은 건강한 행위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결코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가 존재하듯 때때로 어떤 방식의 주장들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불편함이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해진다.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은 주장을 위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주장을 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장에 주장을 더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것을 말로만 듣자니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란 본디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장은 결국 토론을 불러오고 반대 의견을 필연적으로 소환시키는것이 아닌가. 반대의견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된다. 주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설득에 있지만 타인의 주장을 듣고 설득되는 일은 그리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갈등은 심화되거나 새로운 갈등을 파생시킨다. 주장이 가져오는 악순환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주장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주장을 해야 하는 것일까.삶에 있어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주장이라는 행위의 존재 이유이지만 실효성이 거의 발휘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제는 주장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를 수정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본디 자신을 확장하고픈 존재이기 때문에 크던 작던 자신을 주장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것이 먹혀들어가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 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주장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면 주장의 목적을 설득이 아니라 생각의 확장에 두는 것은 어떨까.
다시 말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끄집어낼 촉매제로써 주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쪽에서 주장이 나온다면 필연적으로 반대편에서는 그에 맞서는 또 다른 주장이 나온다. 세상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때로는 양면성을 뛰어넘어 다차원적 의견을 가진 문제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반대 의견을 앞에 두고 주장해야 할 때의 두려움이 조금은 희석될 것도 같다. 나는 애초에 저 사람을 설득할 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듣기 위해 주장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다소 비겁한 약자의 정신 승리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다툼 없이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스킬이다. 발표를 두려워하는 아이들, 자기주장을 하기 어려워하는 성인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마인드 세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