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

산 넘어 산

by 정 호
인생은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다.


국가에서 정한 아이들의 교육 목표나 성취해야 할 기준의 명칭을 살펴보자. 국가에서 결정한 미래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아이들이 길러내야 할 핵심역량이라는 것들의 명칭이, 절차적 사고력, 문제 해결력,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 지식정보 처리능력, 자기 관리 능력과 같은 이름을 띄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인생에 있어서 판단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몹시도 중요하다는 것을 국가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스스로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삶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중요한 판단과 결정을 돕는 도구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도구는 가치관 혹은 신념이 되겠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며 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에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즉흥적인 감정이나 개인적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이유는 사람이란 본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신념이나 가치관이라는 것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념이나 가치관은 그저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다거나 많이 배워 아는 것이 많아진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재료 삼아 오랫동안 숙고를 거쳐 스스로 내면화를 통해 체득하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신념과 가치관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험과 숙고, 내면화는 동시에 이루어지며 지속적으로 연계되어야 하는데 그것들 각각을 제대로 달성하기엔 큰 어려움이 존재한다. 제대로 된 신념을 갖추고 그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제대로 된 경험을 하는 것이 어렵다. 좋은 경험이 쌓이면 실력이 되지만 좋지 않은 경험이 쌓이면 편견이 된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잘못된 경험을 지속하는 동안 실력과는 멀어지고 편견만 가득한 사람으로 변해갈 위험성이 존재한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나쁜 것은 피해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될 놈은 어찌하더라도 된다는 말은 적용된다. 똑같이 불행을 경험하고 좋지 않은 상황 속에 놓이더라도 되는 놈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소수의 이야기이며 일반화시킬 수 없는 예외사례에 불과하다.


숙고가 어려운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숙고한다는 것,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며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은 귀찮다는 말과 동의어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오죽하면 술집 메뉴에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아무거나를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인간의 게으름을 상징하는 현대사회의 표상과도 같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숙고의 시간을 갖는 사람은 당연히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숙고의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에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수학적 진실이다.


내면화는 또 다른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야 한다는 점이다. 다양하고 올바른 경험을 통해 역량을 갖추고,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낸 다음에는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내 것으로 받아들여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절대 규칙으로 삼아 그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비로소 신념과 가치관을 바로 세운 완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념을 갖추었을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바로 또 다른 신념과 부딪힌다는 점이다. 신념을 세우지 않았을 때에는 세상과, 타인과 크게 부딪힐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신념과 가치관을 세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신념과 부딪히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험과 숙고가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한다면 내면화는 반드시 타인과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 속에서 여물어가는 힘이다. 이것은 피하고 싶고 불편한 과정임에 분명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레벨 1인 캐릭터가 레벨 100인 캐릭터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레벨업을 하는 사냥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벨이 올라가면 비슷한 레벨인 다른 플레이어와 사냥터를 두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자원은 희소하고 항상 위를 바라보는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이것은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경험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 숙고라는 통계적으로 낮은 확률, 내면화라는 최종 보스와의 맞대결, 이런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신념과 가치관이라는 왕좌에 앉을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어려운 일이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인생을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도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삶이 좀 더 멋져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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