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신념과 융통성, 함께하기 힘들지만 함께할 수 있다면

by 정 호

인터넷의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철학 선생님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생각해 볼거리가 많이 생겨 좋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내용인 즉,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낸 신인 농구선수"에 관한 기사였다. 사실 기사보다도 댓글을 보면서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이 날도 그런 날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댓글은 항상 그렇듯 승자와 패자를 논할 수 없는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시작은 대충 이랬다.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농구선수보다 못한 직업인가, 의사나 판사를 하다가 농구선수가 되었다면 인간승리라는 식의 기사가 나왔겠나. 이것은 직업에 귀천이 있고 계층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기자의 의식 수준을 알 수 있는 기사이며 이런 올바르지 못한 기자의 생각을 국민들이 볼 수 있게 기사로 발행하는 것은 정당한 저널리즘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반박은 이러했다. "꼭 그렇게 삐딱하게 바라봐야 하는가? 농구만 하던 사람이 자신의 꿈을 보류하는 상황이 당사자에게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꿈을 결국 이루어낸 상황 자체가 감동적이며 기사거리로 충분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무수한 댓글들이 그 이후에도 댓글창에 수없이 달리고 있었다.


두 의견 중 무엇이 맞는 의견일까?
맞고 틀리고를 과연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세상 다툼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클래식이 되어버린 물에 컵이 반이나 있네 반밖에 없네 하는 인용문을 굳이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 이 세상은 관점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으로 매일매일이 심심할 틈이 없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본인의 현재 입장성장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직업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포지션과 성장의 과정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상황을 바탕으로 동일한 객체를 다르게 판단하며 살아간다.


신실한 종교인인가 사이비 광신도인가,

성공한 사업가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합리적 페미니스트인가 단순한 혐오주의자인가, 효자 효녀인가 마마보이(걸)인가,

사회발전을 외치는 진보주의자인가 그저 불만 표출이 일상인 불평분자인가,

대 학자인가 지식 장사꾼인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인가 독단적인 폭군인가,


심리학 용어중에 "파레이돌리아"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해석이 어려운 모호한 대상에서 의미있는 형태를 찾아내려는 심리 현상을 뜻한다. 달에서 토끼의 모양을 떠올리거나 대한민국 지도를 보고 호랑이나 토끼 모양으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파레이돌리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심리적, 서사적, 환경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말을 설명하는 적절한 심리 용어의 하나로 활용된다.


참으로 많은 양갈래 길에서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입니다.라는 달콤한 인생의 첫 대사처럼 판단의 객체는 가만히 있을 뿐인데 서로 다른 마음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판단에 작용하는 객관적 기준과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물론 존재하겠지만 판단은 결국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감성의 동물이라 했던가, 머리로 옳고 그름을 알아도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이라. 따라서 애초에 서로 다른 개인들의 의견을 완전히 합치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신념.


그러기에 합의라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저 내가 믿고 있는 생각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정답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흔들리며 스러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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