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이 유명한 대사는 주인공 하정우가 상대 세력의 보스이지만 한편으로는 옛 친구이기도 한 조진웅과의 세력 다툼 상황에서, 아무리 세력 확장을 위해서라지만 그저 막무가내로 쳐들어 갈 수는 없으니 친구일지라도 칠 수밖에 없을 만큼 합당한 명분을 만들어오라는 무언의 압박을 최민식에게 가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명분이란 과연 무엇인가.
명분이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거창한 허례허식 같은 것, 혹은 실리적이지 않은 먹물들의 이념논쟁 같은 것을 떠올린다.
학창 시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괴롭고 답답했던 부분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 때문에 궁핍해져 가고 핍박받는 모국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도 아니오, 권력을 향한 욕망에 휩싸여 피도 눈물도 없는형제간의 골육상잔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 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고관대작들의 명분과 실리 사이의 다툼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귀한 세월과 훌륭한 인물들을 잃어가는 모습과 마주했을 때다.
역사 속의 이야기로만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이 명분과 실리 사이의 다툼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며 그것을 옆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실제 명분 타령을 하다가 골든 타임을 놓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큰일이 터진 뒤 책임을 떠넘기는 리더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답답한 마음이 들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잠시 한 번 생각해보자. 명분이라는 것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결정권을 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거창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사실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 역시도 늘 명분을 찾아 헤매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권력이 크면 클수록 명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규모 역시 커지기 때문에더욱 큰 비난을 받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미명 하에 유명 연예인들을 억지스러운 상황에 밀어 넣어 그들을 곤란에 처하게 만들 때가 있는데 그중에 갑자기 연락해서 돈을 빌려 달라거나 스태프들의 밥값을 계산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예를 들어 유재석 정도 위치에 있는 연예인에게 스태프들 100명의 밥 한 끼 비용을 치르는 것은 그리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닐 것이다. 국밥 한 그릇씩 먹었다면 백만 원이면 될 것이고 1인당 많이 잡아 5만 원씩 잡더라도 5백만 원이면 해결될 것이다. 이 금액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것은 유재석의 예능프로그램 1회 출연료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유재석은 그럴 때면 짐짓 놀라는 척, 혹은 당황하는 척을 하며 내가 왜?라는 표정으로 스태프들에게 반문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예능판에 몸 담아온 프로로써 본능적으로 몰래카메라를 직감했기 때문에재미를 끌어내기위한 의도적인 제스처일 수도 있지만, 인간인 이상 매번 그렇게 눈치를 채기는 어렵다고 가정해보면 왜 유재석 입장에서는 그리 큰돈도 아닌 돈을 가지고 충분히 생색도 내고 사람들로부터 환호도 받으며 이미지 메이킹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절호의 기회에 본능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인간은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내가 충분히 쉽게 해낼 수 있으며 그것이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것들은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되지 않는다는말이다. 그런 것 말고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를 납득시켜 보아라.아마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속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
명분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보편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다수의 마음을 휘어잡을만한 보편성과 합리성을 갖춘 명분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명분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다.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끊임없이 스스로 그 의미를 찾느라 시간과 정신을 쏟아붓는다. 능력이 부족할 때는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느라 이놈에 명분, 다시 말해 "왜"냐는 질문을 던질 여유가 없지만 능력이 충분해졌을 때에는 그것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비로소 더 깊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유재석 정도 되는 유명인이건 우리 같은 필부들이건 인간인 이상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는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측면이 있다. 하물며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 여기저기 수요가 끊임없이 요청되어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사람이나, 결정 한 번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슈퍼 인플루언서들에게 어찌 당위와 명분이 가벼울 수 있을까.여기까지 생각에 이르게 되니 어쩌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실리보다 명분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위나 명분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거부감을 갖거나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또 하나의 동력과도 같다. 나는 왜 살을 빼야 하는가, 나는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그 당위와 명분이 확실하고 강력할수록 동기부여의 힘 또한 커진다.그것은 삶의 또 다른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만을 놓고 보았을 때, 어쩌면 실리보다 명분을 추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실리적인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절대적인 명분이자 완벽한 실리의 추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