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 프로젝트를 보다가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언젠가 꼭...
처음 국토대장정을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로 설정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런저런 경험의 폭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던 대학시절 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늘 분주했던 대학시절, 방학이 되면 꼭 도전해보리라 생각했던 국토대장정이었으나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희한하게도 급하게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기는 탓에, 마음속 버킷리스트는 항상 1순위에서 한 두 걸음 뒤로 미루어두기 일쑤였다. 결국 한 번도 실행해보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해버리고 말았고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쉬웠던 순간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국토대장정에 도전해보지 못한 것을 꼽곤 한다.
그 후 이래저래 살다 보니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버킷리스트 목록 중 하나였던 국토대장정이라는 단어를 영화 한 편을 마주하며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었다.
만일 본인이 상을 타면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을 하겠다는 하정우의 장난 섞인 시상식 공약에서 비롯된 577 프로젝트라는 영화가 있다. 하정우가 자신의 지인들로 팀을 꾸려 서울에서 해남까지 600km의 거리를 걷는 것을 찍은 페이크 다큐 영화인데 보는 내내 걷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그것을 해결해내는 과정, 그러는 동안 무르익어가는 관계와 깊어진 관계 안에서 뿜어지는 여유와 유쾌함까지 모든 것들이 영화이지만 영화 같지 않았고 아마도 짜인 각본이 어느 정도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날것의 느낌이 나서 좋았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그런지 많은 것이 변했지만 결혼 전까지만 하더라도 항상 사람을 갈망했고 인간관계에 허기져 있었다. 모임을 찾아다니고 모임을 만들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거나 누군가와 같이 있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해 견딜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국토대장정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꽉 찬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 방에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모두 함께 단 며칠이라도 어딘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