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사람은 불행한가 행복한가

아무도 모른다

by 정 호

평생을 민감한 감수성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그들을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오감은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해서 같은 것을 보고 듣더라도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연결 지으며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오감이 발달하여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받아들인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물이 차면 넘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내면에 쌓이는 다양한 정보와 감정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처리하여 분출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여 보통 사람들보다 쌓여가는 것들이 많은 그들의 삶은 역동적이거나, 역동적으로 보이거나, 역동적인 것을 추구한다.

내면에 쌓이는 것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은 결국 예술가가 되거나 예술가인척 하거나 자괴감에 빠진다. 이것은 타인의 인정과는 상관없이 오롯이 나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영역의 문제로 귀결된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그 저주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져 자기를 파괴하는 결말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의 일상은 평온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편인지도 모른다. 달이 지구의 주변을 무한히 돌듯 민감한 감수성 곁에는 불안과 우울이라는 위성이 주기를 갖고 순환한다. 이러한 이유로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들은 평화로움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한창 결혼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취미가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으면 결혼하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무언가를 발산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결혼생활은 독이 든 성배 인지도 모른다. 달콤하고 황홀하지만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 결혼이란 시간이라는 한정된 재화를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선택이기에 그로부터 발생하는 두려움들이 독신을 선택하게 하는 커다란 이유로 작용하곤 한다.


민감한 사람은 이런 불안정감을 기본 토대로 놓고 살아가기에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성향의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때때로 그런 성향,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동경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얻는 평온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에 흠뻑 취해가며 감상에 젖는 황홀경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성향과 시간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또다른 축복이다. 인간은 문학, 음악, 미술, 체육을 비롯한 예술활동을 통해 황홀함을 경험하기도 하고 봉사나 시민단체 활동과 같은 사회기여를 통해 자기 효능감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그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남다른 시선에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평범치 않다. 남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일부분. 어떤 의미에선 선지자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하는 그들의 인식에 닿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세상엔 남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바라보고 제시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꼭 전자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그런 혜안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