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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Mar 08. 2021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을 다시 한번 사는 일

빈 곳을 채우는 수양의 과정

아이를 키워보니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늘어간다.


그것은  살아오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종류의 기쁨임과 동시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전해수 있을 것인가, 내가 주려고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필요한 것을 시기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을까, 좋은 것은 무엇이며 나쁜 것은 무엇인지 내가 구분할 수 있는가. 아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이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아마도,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은 부모로서의 마음 때문이리라.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내 한 몸만 생각하며 자신만을 갈고닦으면 될 일이다. 아니 어쩌면 갈고닦을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라는 존재, 즉 부모로서 일정기간, 일정 수준까지 책임져야만 하는 한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세상 앞에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선택의 영역에서 의무의 영역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있겠지만 그중 으뜸은 당연하게도 본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책을 좋아하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면서 예의도 바르고 교우관계도 원만했으면 좋겠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동생과 다투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하고 개인적으로 완성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인 중에서도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며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어른들도 이뤄내기 힘든 수준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부모이기에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대를 하고 그 기대는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때로는 부모가 무리한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의할 점은 내가 이뤄내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한 번 되돌아보자.


책을 즐겨 읽는 아이였는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는가? 예체능에 능한 아이였는가?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모든 친구들을 아우르며 인기를 독차지하는 아이였는가? 다투고 나면 바로 사과를 건네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아이였는가? 선생님에게 모르는 것을 즉시 질문할 줄 아는 당당한 아이였는가? 그 질문 때문에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이 날아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한 멘탈을 소유한 아이였는가? 교사에게 질문을 던지더라도 친구들이 야유를 보내지 않을 정도로 교실에서 인정받고 있는 아이였는가? 음식을 전혀 가리지 않고 쇠도 씹어먹는 아이였는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혼자서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아이였는가? 만일 본인이 그런 아이였다면 내 자식에게도 그런 것을 기대해봐도 좋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내오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의 자녀가 완벽해지길 바란다. 이 고민을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볼 만한 유일한 방법은 존재한다.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는 것이다.


자녀가 완벽해지길 바란다면
내가 완벽해져야 한다.


자녀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함께 읽어야 한다. 자녀가 앉아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공부를 하길 바란다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이가 배려심 넘치는 심성을 갖추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가정에서 배우자에게 배려심 넘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아이가 운동을 하길 바란다면 아이와 함께 운동을 하면 된다. 가르침과 받아들임은 결코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부족한 나를 채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책과 담을 쌓고 살아왔더라도 자녀가 책을 가까이 두는 삶을 살아가바란다면 지금부터 자녀와 함께 책을 읽어야 한다. 자녀가 평생 운동을 취미 삼아 살아가길 원한다면 평생 운동을 안 해 금세 헐떡이는 저질 체력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자녀를 위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득이 되는 행위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지나온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기회로써 자식이라는 시련이자 선물을 나에게 보내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은 바쁘다. 경제활동도 해야 하고 본인의 취미생활도 하고 싶고 그간 맺어온 인간관계에 갑자기 소홀해지기힘들며 잠깐만 고개를 돌리면 당장 처리해야 할 생활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게다가 아직 꿈이 남아있는 성인이라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뛰어야 할 코스들도 남아있다. 이런 와중에 자녀에게 본이 되기 위한 노력까지 기울여야 하니 이것 참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녀가 걸어가기를 원하는 길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자녀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는 것만큼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없다. 아니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삶은 수양의 과정이라고 던가, 족했던 나를 채워가는 시간이라 생각한다면 자녀를 기르는 일은 고되기는 할 지만 분명 의미 있고 기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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