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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an 25. 2021

오고 가는 에너지

고갈도 충전도 관계 안에서 비롯되는 일

연극의 3요소를 배우, 장소, 관객이라고 한다.


사람의 얼굴은 눈, 코, 귀, 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처럼 연극을 꾸려가기 위해서 배우와 장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관객이 3요소에 포함된다는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때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장 공연이 대부분인 연극에서 관객이 없다면 얼마나 공연이 심심하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흥이 나지 않겠느냐만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같은 라이브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3요소, 뮤지컬의 3요소, 판소리의 3요소에 관객이 포함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왜 다른 라이브 공연들과 달리 연극에서만 관객을 주요 요소로 꼽는지 그 차별점을 알기는 힘들지만 관객을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꼽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대규모의 공연도 물론 있겠지만 연극 무대는 보통 작은 경우가 많다. 배우들은 자신이 준비해온 대사를 던지며 관객과 마주하고 매 순간 관객의 숨소리와 표정, 호흡과 감정을 읽게 된다. 관객은 연극 무대에 직접 올라서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의 연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다란 역할을 한다. 관객의 피드백이 좋으면 연극배우들은 관객의 반응에 힘입어 더욱 열정적으로 공연을 하게 된다. 


한창 연기에 몰입해서 극을 이어가던 도중 관객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 슬픈 장면에 신도 모르게 더욱 몰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배우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면 관객과 배우의 상호작용이 연극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매번 달라지는 이 미묘한 교류 덕분에 같은 공연도 매번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수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육활동의 순간들은 연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부각되면서 수업의 진행 방식부터 많은 부분에 있어 학습의 주도권이 학생에게 이양되는 모습을 보이고 그것이 이상적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하지만 결국 교실에서 학습의 내용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주도권은 교사가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골라내는 것부터 토론을 할 것인지 글쓰기를 할 것인지, 모둠 활동을 할지 개인 활동을 할지는 모두 교사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된 뒤 실제 수업이 진행된다. 다만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학생의 반응에 따라 처음 계획과는 달리 얼만큼 유동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것이 노련한 배우의 능숙한 애드리브와 노련한 교사의 수업이 겹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든 교사든 외부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본인의 업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대한의 능력으로 수행해 내는 것이겠지만, 사람 간에 진행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오고 가는 에너지 속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변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에너지가 상호작용하는 교실 안에서 항상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만 발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은 고갈이 발 디딜 틈 없는 충만한 충전의 세상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교사를 제어하려 한다. 때로는 애교로 때로는 반항으로 때로는 무관심함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애쓴다. 이것은 고갈의 세계이며 안타깝게도 충전의 시간보다 고갈의 시간이 더 자주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고 부모는 필요한 것을 주려하지만 교사는 필요한 것을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교사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말이지만 교사이기에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고 가는 에너지의 교류 속에서 배우들이 기뻐하고 힘들어하듯 교사들 역시 기쁘고 힘든 순간이 있다. 고갈의 시간보다는 충전의 시간이 더 자주 오기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고갈의 시간보다 충전의 시간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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