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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08. 2020

든든한 조력자의 위대함

자력추구의 믿음직한 바탕   

대학을 졸업하고 갓 직장인이 되었을 무렵, 큰 돈은 아닐지라도 아르바이트로는 벌기 힘든 액수의 돈을 한 달 월급으로 손에 쥔 채, 나를 위해 쓴다면 어디에 이 돈을 쓸 수 있을까 몇 달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돈을 써본 기억이라곤 대학시절 친구들과 술 마시는데 써본 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고민의 시간이 더욱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월급을 받으면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거나 좋은 옷을 사 입거나 자신이 몰두하는 취미생활을 위해 별 고민 없이 행복한 소비를 하는 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여태껏 좋아하는 것 하나 없이 뭐하고 살았나 싶어 한참 동안 취미 발굴단이 되어 여기저기 쏘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가던 찰나,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누구나 몸속에 숨겨두고 있다는 전설의 유니콘과 같은 그것. 식스팩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솟구쳤다. 그리하여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개인 PT샵에 등록을 했다.


주 2회였나 3회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월급의 1/5 정도 되는 거액을 들여 몸짱이 되겠다며 갑작스럽게 선택한 취미를 그리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운동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게 남아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매 운동시간마다 트레이너는 옆에서 당근과 채찍을 끊임없이 번갈아가며 제공했다. 그중 가장 가혹하게 느껴졌던 채찍질은 길지도 않은 딱 한 마디의 말이었다.


"하나 더!"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도저히 하나를 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면 어김없이 트레이너의 단호하고 강력한 마법의 문장이 귀에 꽂혔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 더!!!


그렇게 지켜보다가 정말 위험할 것 같은 순간이면 트레이너는 한 문장을 추가하곤 했다.


제가 옆에서 보조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법 같은 말은 마법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다. 도저히 하나를 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극한의 후덜 거림을 극복하고 꼭 한두 개를 더 해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탈진 직전의 상태에서 헉헉대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트레이너는 당근 하나를 무심하게 툭 던진다.


잘하셨습니다. 혼자 해내셨어요


PT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같이 같은 트레이너 아니냐며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PT강사들이 받는 화법 수업이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든든한 조력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기보다, 나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제공해주었기에 감사한 일이다. 물고기를 직접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우리의 옛 속담처럼 진정한 조력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스스로 방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교육학 이론 가운데 근접 발달영역(ZPD)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학습자가 홀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약간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능력 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이 영역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과제, 즉 약간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핵심역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리한 과제를 제시하며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제대로 된 조력자가 아니다. 트레이너가 처음부터 나에게 보디빌딩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과업 수준의 운동량을 제시했다면 나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운동을 그만두었을 것이 분명하다.


든든한 조력자가 내 곁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을 때, 우리는 젖 먹던 힘을 짜낼 용기를 꺼내어 낸다. 우리는 누구에게 그런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그런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 마음껏 잠재된 능력을 펼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면 어찌 내일이 기대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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