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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Nov 06. 2020

연어와 인간의 회귀 본능

돌아가려는 그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연어는 강에서 태어난다. 이후 바다로 나가 성장하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자신의 고향인 강으로 물살을 거슬러 되돌아온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잘 살다가 왜 굳이 물살을 거스르면서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는지, 연어의 회귀 본성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후손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수도, 그저 본능적인 끌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연어의 회귀 본능을 바라보다가 사람 또한 비슷한 알고리즘이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흙에서 뛰놀며 싱그러운 흙내음을 맡고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된 이후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땅이 그리워지는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고 한다. 어린 시절 조부모 손에서 자란 사람들은 장성한 후에도 할머니 댁에 대한 애틋함과 아련한 마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남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애틋하고 아련한 마음을 품게 되는 대상은 그것이 단순히 전통적이고 옛스럽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의 골목을 누벼가며 자란 사람은 도시의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그리워할 것이고, 스마트폰에 익숙한 우리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스마트폰과 관련된, 우리에겐 낯설지만 그들에겐 애틋한 형태의 어떤 감정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


재즈를 들으며 자라온 사람에겐 재즈가, 트롯과 함께 자라온 사람에겐 트롯이, 아이돌과 함께한 세대에겐 아이돌이 각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며 그것이 입력되는 순간이면 언제든 과거의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머신처럼 작동한다.


장소나 습관, 음식이나 장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린 시절에 반복적으로, 혹은 임팩트 있게 쌓인 경험들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과 습관을 형성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후의 삶 전반에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다시 말해 무의식의 나를 만들어낸다.


무의식의 나와 드러나는 나 사이에 간극이 크지 않은 사람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저 우주에 존재하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지는 개인들은 이따금 느껴지는 그 딜레마 속에서 어느 것을 붙잡아야 좋을지 몰라 허우적대고 만다.   


기어코 슬픔의 벼랑 끝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마는 사례들을 우리는 살아가며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불우한 경험들이 빚어낸 수많은 예술가들, 못난 부모를 만나 절망과 증오 속에서 부모와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결국 그토록 증오하던 부모와 비슷한 짝을 만나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잘못된 연애인 줄 알면서도 비슷한 부류의 나쁜 이성에게 반복적으로 휘둘리는 사람들, 이런 사례는 모두 유년기의 결정적 경험에서 비롯된 비극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은 편하다.


불행과 어둠조차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일이다. 태초의 경험이 조각해둔 편안함이라고 할까. 유년기의 그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불행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개인의 삶을 파고들어 결국 편안한 불행이라는 늪에서 허우적 대도록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참담할 때가 있다.


끝끝내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놓아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겪어온 고통의 시간을 헤아릴 수 없다. 감히 말하지 말고 조용히 헤아리려는 노력을 해볼 것, 그것이 묵념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연어의 회귀 본능은 숭고한 자기희생이라 볼 수 있겠으나 인간의 회귀 본능은 어떤 유년기를 거쳤느냐에 따라 축복의 세례가 될 수도, 저주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그렇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삶은 운과 노력의 영역이다. 살아가며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노력뿐일진대 노력의 영역 안에서 내가 해야 하는 미션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뿐일 테다. 백 점짜리 삶도 없고 빵점짜리 삶도 없다. 누구나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는 지점이 있다. 부러워할 것도, 자만할 이유도, 비관할 일도, 동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하루를 채우기도 바쁘다. 인간에게 회귀 습성은 두려운 본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화는 언제나 이성이 승리할 때에만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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