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중반에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초, 중학생 시절, 십 대 중반까지 나의 용돈은 오롯이 pc방과 만화책을 읽는 데에 투입되었다. 만화책방에서 한 권에 200원이면 빌려볼 수 있던 만화를 무슨 생각이었는지 빌려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어느 날부터 한 권 한 권 사 모으곤 했다.
소년만화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볼부터 시작해서 용사물의 시초 격인 타이의 대모험(드래곤 퀘스트), 뜨거운 코으트를 가아른다는 슬램덩크, 이제는 스릴러 부문 명작 반열에 올라있는 몬스터나 21세기 소년과 같은 일본 만화는 물론이거니와 실제 당시 국내 춤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힙합, 90년대 오락실 격투 게임의 쌍두마차였던 킹 오브 파이터즈와 철권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격투를 벌이며 축구경기를 한다는 신선한 컨셉의 파이트 볼과 같은 한국 만화들... 당시 전 권을 구입했던 것으로 대충 생각나는 것들만 나열해봐도 대략 이 정도가 떠오른다.
만화책을 오죽 좋아했으면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교 후문에 있던 만화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다 했을까. 당시 최저임금이 2300원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최저임금을 지켜주는 사업장이 적었고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수룩한 학생에겐 그러기가 더 쉬웠으리라. 하지만 그때의 나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당시 최저임금보다 20퍼센트 낮은 시급 1800원을 받으며 딱 한 달만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속내는 따로 있었다. 한 달 동안 그 책방에 있는 모든 만화책을 다 읽는 것. 실제로 다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엔 만화책을 보다가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과 마주한다거나 하는 감상의 과정 없이 그저 텍스트와 그림을 눈에 쑤셔 넣는다는 느낌으로 정말 빠르게 읽어 해치웠다. 한 달 후 아르바이트가 끝나며 받았던 월급봉투보다 나를 더욱 기쁘게 했던 일은, 더 이상 읽을 만화책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20년이 훌쩍 넘은 옛 일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물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포장마차 어묵이 하나에 백 원, 분식집에서 끓여 파는 라면이 천 원이었던 기억으로 당시의 물가를 유추해본다. 지금 어묵 값이 하나에 오백 원에서 칠백 원정도 하고 분식집 라면은 아무리 싸도 삼천 원 이하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어묵과 라면으로 추측하는 생활물가는 20년간 적게는 3배, 많게는 7배가량 뛰어올랐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에 비하면 만화책 가격의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다. 당시 만화책 한 권의 가격은 2500원으로 기억된다. 현재 만화책 단행본 1권의 가격이 4500원 정도 하는 것을 보니 상승률은 100퍼센트가 채 되질 않는다. 당시 내가 주로 소비했던 다른 생활물가(군것질, pc방)와 비교해보았을 때 당시의 만화책 가격이 비싼 편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려 읽기만 해도 충분했을 만화책을 굳이 구매하여 소유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생에 처음 무언가를 강렬하게 소유하고 싶었던 기억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만화책을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그렇게 좋아했고 즐겨 읽던 만화책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멀어졌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매일같이 만화책방을 드나들던 습관은 마치 만화책과 만화책방이 나의 고향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기억 깊은 곳에 만화책의 냄새나 책을 넘길 때의 소리, 넘기기 전에 엄지와 검지로 쥐고 있던 종이의 촉감과 같은 당시의 기억들을 강렬하게 각인시켜 놓았다.
귀향 본능이랄까. 그렇게 각인된 어린 시절의 습관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향수를 낳아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틈이 나면 가끔씩 만화책방에 들러 만화책을 뒤적이곤 했다. 삼십 대 중반이 된 이제는 시간이 없기도 하고 다른 즐길거리가 넘치는 세상이기에 더 이상 만화책방에 가거나 만화책을 빌려 읽는 일은 없게 되었지만 가끔 집에서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가 애니메이션화 되어 방영을 하는 것을 마주하면 반가운 마음에 잠시 추억에 잠기게 된다.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강국이다. 그 수많은 일본 만화들 중에서도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만화가 있다. 요즘은 또 많이 바뀌었겠지만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가 바로 그것인데 이 세 만화의 앞글자를 따서 원나블이라고도 한다. 그중에도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만화는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는 원피스라는 만화인데 이 만화의 작가는 가히 해리포터를 집필한 죠앤 롤링에 버금가는 재력가이자 유명인이 되었음에 틀림없을 것만 같다.
그런 애니메이션 강국에서 십수 년간 일등의 자리를 지키던 원피스를 제치고 최근 가히 신드롬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만화가 있다고 해서 궁금증이 생겨 검색을 해봤다. 귀멸의 칼날이라는 제목의 만화는 내용만 보면 특별할 것은 없다. 주인공이 점차 성장해가며 점점 더 강한 흡혈귀를 때려잡는다는 흔하디 흔한 성장만화 중 하나였다. 설정도, 등장인물도, 주인공의 서사나 캐릭터들의 사연들도 모두 어디에선가 봤음직한 이야기들이라 새로운 것은 없었다.
마침 넷플릭스에 만화책의 일부가 애니메이션화 되어 방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재미있길래 이렇게 야단인가 궁금한 마음에 시청을 하게 되었다.
흥행의 이유는 명확했다. 애니메이션화를 너무 잘해놨다는 것, 만화책에선 온전히 느끼기 힘든 액션 장면이나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너무도 화려하고 웅장하게 시청각적으로 재생산해냈다는 것, 그것이 이 만화의 흥행 이유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거나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너무도 위대한 사람들이 이미 수많은 예술적, 학술적 흔적들을 세상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생산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존의 것을 가공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일 테다.
최근 어느 뉴스에서 만화 귀멸의 칼날 작가가 올해 서른한 살의 나이로 2천억의 수입을 올렸다는 기사를 봤다. 애니메이션화가 아직 만화 전체의 삼분에 일도 진행되지 않았고 추후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나 피규어, 일본 특유의 서브컬처 문화를 향유하고 즐기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파생되는 각종 추가 소득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얼마의 수입을 올릴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엄청난 파급력이 아닐 수 없다.
대결의 과정을 통해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스포츠 계통의 순위 구도와는 달리 문화예술 부문에서는 흥행 1위가 작품의 완벽함을 담보하진 않는다. 문화예술은 감상자의 주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며 분위기나 흐름에 따라 다소 작품성이 떨어지고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귀멸의 칼날 역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으나 경제적인 측면만을 놓고 본다면 성공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소년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교훈과 철학에 있다. 이것은 특히 다른 나라의 만화보다 일본 만화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일본 특유의 표현방식 때문에 자칫 과하면 너무도 오글거려 차마 다음 페이지로 넘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적정선만 잘 조율해 낸다면 꽤 큰 울림과 감동을 준다.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대부분의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은 이러한 공식을 따른다.
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해마다 만화를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서너 명은 있다. 그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무엇인지 들어주기만 하는데도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존재를 담임교사가 알고 있고, 심지어 내용까지 알고 있다는 데에서 은근슬쩍 레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가 때로는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경우도 있다. 손에 컴퓨터를 한 대씩 들고 다니며 선사시대 이후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기 가장 좋은 환경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을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다. 네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어쩌면 그 안에서 스스로 교훈과 철학을 찾고 좋지 않은 길을 비켜가려 노력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