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지 않으려는 태도

애잔한 억척스러움을 때로는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

by 정 호

"오늘은 뭘 먹을까?"


"어.. 그러니까... 음..."


먹고 싶은 음식 하나 고르기 어려워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때때로 우유부단하다는 성의 없는 표현으로 그의 망설임의 이유를 단순하게 결론지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을 망설이는 데에는 우리가 결코 알아낼 수 없을 무수히 많은 이유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선택지로 놓인 음식에 어떤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던가, 그날따라 선택지로 놓인 것들에 특별히 마음이 가질 않는다던가, 마침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망설임은 우유부단함과 동격이라는 쉬운 수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공을 들여 생각하는 일은 음식 앞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고민의 시간이 꼭 집이나 차를 구매한다거나 대학을 고르는 것처럼 일생을 살아가며 몇 번 없을법한 거대한 선택지 앞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옷을 산다거나 여행지를 선택하거나 책을 고르는 것처럼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무수한 선택지 앞에서 쉽사리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여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굉장히 섬세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보다 더욱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실패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실패해도 괜찮은 사람에게 실패란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살면서 얼마든지 겪어도 좋을만한 경험이 되는 작은 시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실패 한 번으로 삶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을 등에 업고 살아온 사람에게 실패란, 날개가 거미줄에 엉킨 잠자리가 버둥거리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처럼 압도적인 절망을 마주하는 순간일지 모른다.


완벽에 가까운 선택을 하고 싶다는 불가능한 욕망,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꺼뜨릴 수 없는 이 화마의 저주는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불태우려 한다. 그것은 겉과 속을 모두 바삭바짝하게 만든다. 게다가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성실과 합리성이라는 그럴듯한 가면 뒤에 숨은 채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그래 나는 현명한 선택을 했어."와 같은 생각을 하며 우리는 매우 자주, 그리고 쉽게 스스로를 속여 넘기곤 한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투입하여 최대한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태도를 비난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기도 하며 물리학의 법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 가성비만을 따지며 살아가기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도,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남도 어느 순간에 가서는 지치게 된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태도에는 억척스러움이 묻어있다. 한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면 또 한 동안은 조금 대충 살아보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운동선수를 지도하는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항상 힘을 빼라는 주문을 한다. 자유자재로 힘을 줬다 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아마 살아가는 일도 이와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